[신용석의 지구촌] 세계 도처의 당나귀 수난<850회>     
[신용석의 지구촌] 세계 도처의 당나귀 수난<850회>     
  • 인천일보
  • 승인 2018.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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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인 

 

1979년 3월 이집트와 이스라엘이 평화조약에 서명함으로써 '세계의 화약고'로 여러 차례 전쟁을 치른 두 나라간의 평화는 물론 팔레스타인 문제도 해결될 기미가 보였다. 당시 중동 평화의 주역을 담당하고 있었던 인물은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이었다. 육군사관학교와 육군대학출신으로 나세르와 함께 1952년 이집트혁명에 참여했던 사다트는 이스라엘의 베긴 수상과 노벨평화상을 받기도 했지만 1981년 카이로 근교에서 암상당해 중동평화의 꿈은 물거품이 되었다. ▶1967년에 시작된 제3차 중동전쟁 때는 조선일보 리영희 당시 외신부장의 데스크를 받아가며 기사를 썼고 1973년에 터진 제4차 중동전쟁에는 한국기자 최초로 이스라엘 쪽에서 종군기자로 취재했던 필자는 중동의 평화무드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30여 년간 지속된 이집트와 이스라엘의 무력대결이 종식되고 평화무드가 조성되던 당시는 오늘의 한반도 정세와 유사했고 어렵사리 회사에서 출장허가를 받고 이집트로 향했다. ▶카이로에서 취재를 끝내고 당시 소련의 원조로 완공된 나일강의 아스완 댐을 취재하기 위해 열차에 몸을 실었다. 아스완에 가기 전에 이집트의 경주 격이 되는 역대 왕릉 등 고고학적 유물이 많은 룩소르를 빼놓을 수 없었다. 열차 안에서는 장거리 여행에 음식을 준비하지 못한 필자에게 이집트인들은 경쟁이나 하듯 음식을 나누어주던 훈훈한 인심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룩소르역에 도착하니 수백 마리의 당나귀들이 역 앞에 모여 있었다. 자동차가 귀했던 시절이어서 당나귀를 타고 안내인과 함께 룩소르를 관광하는 것이어서 나이 지긋한 안내자를 택해 반나절 이상을 당나귀를 타고 다녔다. 이집트 당나귀는 영리하고 힘도 좋았다. 몸무게가 제법 나가는 필자를 태우고 귓덜미에 땀을 흘리면서도 산언덕을 힘차게 올라갔고 필자를 태우고 안내인보다 먼저 기념품 가게로 달려갔다. ▶이집트뿐 아니라 전 세계의 당나귀들이 수난을 겪고 있다. 오래전부터 중국의 보약으로 알려져 있는 아교(阿膠)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15년 전에는 500g에 10달러정도였던 것이 400달러까지 값이 치솟았고 주원료가 당나귀 껍질이어서 중국뿐 아니라 세계도처의 당나귀들이 증발되는 것이다. 통계에 의하면 전 세계 4400만 마리의 당나귀가 살고 있는데 매년 아교 원료로 2백만 마리 이상이 도살당한다는데 중국인들의 기호약품이 조만간 당나귀까지 멸종시킬 것 같아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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