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간 노동자 삶 노래 … 정세훈 시화집 발간

 

▲ 정세훈 지음, 푸른세상, 144쪽, 1만3000원


낮은 곳에서 읊는 "그대, 아프지 말라"



'우리가/ 이 세상 꽃이 되어도// 잘난 꽃 되지 말고/ 못난 꽃 되자// 함부로/ 남의 밥줄/ 끊어놓지 않는// 이 세상의/ 가장 못난 꽃 되자'(정세훈 '우리가 이 세상 꽃이 되어도' 전문)

인천 민예총 이사장인 정세훈 시인의 시력 30년을 담은 시화집 <우리가 이 세상 꽃이 되어도>가 나왔다.

1989년 '노동해방문학'과 1990년 '창작과 비평'으로 문단에 나온 뒤 30년 동안 노동자를 비롯한 민중의 고단한 삶과 함께 그들의 절망과 희망, 어둡고 힘들고 낮고 핍진한 삶을 담아 노래해온 시인의 작품 53편에 화가, 판화가, 전각작가, 서예가, 사진작가 등의 분야에서 활동하는 52명의 시각 예술가들이 손을 보탰다.

시화집 발간과 함께 어려운 예술가들을 돕는데 사용하게 될 기금 마련을 위한 시화전 '아프지 말라-우리가 이 세상 꽃이 되어도'가 지난 4일부터 17일까지 서울 인사동 '고은 갤러리'에서 열리고 이어 10월20일부터 26일가지는 시인의 고향인 홍성군 홍주문화회관에서 갖는다.

인천에서는 11월2일부터 2주간 문화공간 '해시'와 11월19일부터 내년 2월말까지 부평역사박물관에서 공단과 공단마을 관련 작품을 선정해 열릴 예정이다.

문학평론가인 맹문재 안양대 교수는 해설을 통해 "정세훈 시인은 노동자로서 겪는 아픔과 눈물과 상처에 함몰되지 않고 별을 품는다. 단순히 끌어안는 것이 아니라 지향하고자 하는 별의 세계로 사랑하는 것이다. 따라서 시인이 이상 세계로 삼는 별은 천상이 아니라 자신이 발 딛고 살아가는 지상을 상징한다. 생존 공간이자 인간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터전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인이 별을 노래하는 것은 노동자로서 겪는 삶의 아픔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맞서는 행동이다.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삶의 가치를 초월적인 세계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이루고자 하는 실존의식인 것"이라고 밝혔다.

정 시인은 중학교를 졸업하던 해 객지로 나와 20여년 영세공장에서 주야간 노동자로 일하다 29살 때부터 진페증에 걸린 뒤 오랜 시간 투병생활을 했다. 그는 52세가 되던 2006년에 가망이 없다는 말을 듣고 <나는 죽어 저 하늘에 뿌려지지 말아라>라는 시집을 내고 수술을 받았는데 기적처럼 살아나게 됐다.

"재생되었다"고 말하는 정 시인은 이후 어둡고 힘들고 낮은 곳을 찾아 비정규직 해고노동자 복직에 힘쓰고 있으며 인천작가회의 회장, 고(故) 박영근시인시비건립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하고 현재 인천민주화운동기념과 건립 공동준비위원장, 소년희망센터 운영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아프지 말라. 세상이 좀 더 인간답고 아름다워지려면 노동자 민중이 아프지 말아야 한다. 과거에 아팠던 그들은 현재도 아프다. 그리고 미래에도 여전히 아플 것이다. 그들이 아파하는 한 어쭙잖은 내 시 쓰기는 계속될 것이다."(정세훈 '작가의 말' 중)

/여승철 기자 yeopo99@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