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훈 경기본사 사회2부장


얼마 전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과 저녁 겸 술자리를 가졌다. 식사하는 동안만 해도 서로 안부를 물으며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하지만 수차례 술이 돌아가면서 지인들은 술기운을 빌어 가슴속에 품은 응어리를 하나둘씩 꺼냈다.

첫 시작은 지인A. A는 건설과 도시계획분야를 두루 걸쳐 잔뼈가 굵은 기술직공무원이다. A씨의 불만을 요약하면 이렇다. 정권이 바뀐 후 전임 단체장의 일부 사업이 전면 중단되거나 또는 재검토가 결정됐다고 한다. 공무원 입장에서 이를 놓고 '합리적인 용단이다, 감정적인 흔적 지우기다.'를 판단하기에는 어렵다. '한두 번 겪은 일도 아니고, 그동안 그렇게 했으니까'라고 치부하며 아쉬운 마음을 달랬다. 문제는 중단된 사업에 버금가는 계획을 세워야 하는데, A씨 불만은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상관이 이를 만회할 만한 계획서를 제출하라는데, 그가 요구한 내용이 황당했다. '시민들에게 감동을 주면서, 시장이 무릎을 탁 칠 수 있는 계획서를 만들어 오라'는 것이다. 무릎을 치라면 '스모'를 하자는 건가?

A씨의 불만에 지인 B씨가 핏대를 올린다. B씨는 자수성가한 나름대로 성공한 중견 건설기업사장이다. B씨는 "너희들은 서류만 덮으면 끝나지. 건설업체들은 그 사업에 들어가려고 있는 돈 없는 돈 다 때려 박아서 장비사고 인력충원하고…. 그런데 이제 와서 사업 땡~치면 그 손해가 얼만지 알어. 그깟 계획서 올리는 게 뭐가 힘들어"라며 타박을 한다.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필자의 중재로 간신히 가라앉혔다.
그러고 보니 어느덧 민선7기가 출범한 지 벌써 100일이다. 바뀐 시장들의 공약사업이나 정책도 어느 정도 구체화한 시점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정권교체기 때마다 전임 단체장 역점사업들이 전면 중단되거나 철회되는 사례가 되풀이되고 있다는 점이다.
먼저 화성시의 경우 민선6기 최대 역점 사업이었던 학교시설 복합화(이음터)에 대해 전면 재검토에 들어갔다고 한다. 이유는 학교시설 복합화 사업 추진에 따른 시 재정부담으로 축소를 고려하고 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사실 이 사업은 전국 최초로 추진돼 채인석 전 시장의 최대 역점 사업 중 하나로 꼽힌다. 물론 추진과정에서 잡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 사업에 기대를 건 시민들 입장에서는 아쉬운 대목이다.
평택시도 최근 성균관대학교가 브레인시티 사업 사이언스 파크 참여를 철회하면서 브레인 시티사업뿐만 아니라 지역 내 대형 사업 전반에 대한 재점검 입장을 내놨다. 성균관대학이 브레인시티 투자를 포기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시 행정의 신뢰도 하락과 함께 시민들에게 큰 실망감을 안겨준 데 대한 후속 조치로 여겨진다. 실제로 평택시는 평택호 관광단지 일부해제, 현덕지구 경기도 특별감사 등에 따른 사업 전반의 점검을 통해 추진 여부와 계획 등을 마련할 방침이라고 한다.

경기도의 분위기는 좀 심각하다. 이재명 경기지사의 지사직인수위원회때부터 전임 남경필 지사의 역점사업 5건에 대해 '불법 의혹이 있다'며 특별조사를 요청했고, 실제로 현재 감사가 진행 중이다. 문제가 된 5건의 사업은 경기도시공사 신규투자사업, 반려동물 테마파크 조성사업, 팀업 캠퍼스 관리위탁사업, 이층버스 사업, 한정면허 공항버스 시외버스면허 전환 등이다. 이밖에도 경기도 내 상당수 지자체가 전임 단체장 사업을 검토 또는 중단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올해 유독 이 같은 사례가 두드러지는 이유 중 하나가 이전 지방선거 때와 달리 이번에는 더불어민주당이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사업 중단의 합리성이나 타당성을 따지는 것을 넘어 자칫 전임시장의 '흔적 지우기'라는 정치적 해석이 끼어드는 것도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다만 안타까운 점은 무에서 유를 만들어낸 공무원들, 사업에 따른 수혜를 받을 시민들, 그리고 이 사업을 위해 뛰어든 민간업체들이 느낄 허탈함이다.
우연찮게도 필자의 지인인 A, B의 SNS 자기소개란에는 이런 문구를 같이 사용하고 있다. "hoc quoque transibit"(이 또한 지나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