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수 칼럼] 표절 …계륵인가, 금단의 열매인가
[김형수 칼럼] 표절 …계륵인가, 금단의 열매인가
  • 김형수
  • 승인 2018.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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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달포 전, 가수 조영남에 대한 대작(代作) 사기 혐의가 항소심에서 무죄로 선고됐다. 2년 전 세간의 이슈가 됐던 이른바 '조수 화가'들을 통해 그린 '화투' 그림은 일단 고유 창작으로 인정받게 됐다. 아이디어를 내고 덧칠해 판매한 행위를 사기로 볼 수 없다는 법리적 판단이다. 검찰은 상고했다. 1심과 2심의 결과가 다른 만큼 대법원의 최종판결이 주목된다.

무죄판결이 나온 며칠 뒤 한국미술협회, 한국장애인미술가협회 등 전국 미술협회·단체 등은 이를 규탄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성명서에서 "남이 그린 그림에 사인만 하고 본인 작품이라고 말하는 것은 창작에 대한 모독이며… 화업을 천직으로 하는 화가들의 가슴에 상처와 실의를 안겨주는 것이다"고 반발했다. 미술계가 법적분쟁과 논란에 휩싸였다.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광장에 가면 사람 모양의 조형물이 있다. 누가, 언제 만든 무슨 작품인지 알 수 없다. 표절 시비가 있어선지 아무런 작품 설명도 보이지 않는다. 기단에 인천의 역사가 드문드문 새겨져 있을 뿐이다. 2년여 전 '자기작품 복제' 논란이 뜨거웠던 '인천정명600주년 기념비'다. 인천을 상징하는 작품이 '오리지널'이 아니어서 인천의 가치를 스스로 포기했다는 비판이 거셌다. 자기표절 의혹이 불거진 원인은 인천의 정통성을 표현하는 조형물이 2006년 서울 마포의 한 빌딩 앞에 세운 동일 작가의 조각상을 빼닮았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인천의 문화예술인은 "팔의 방향, 발의 움직임, 가슴을 내민 모습이 누가 봐도 너무 닮아 있다. 일반인의 시선에서 바라볼 땐 '짝퉁'이 아닐 수 없다"고 꼬집었다. 그렇지만 이 기념비 건립 자문위원이었고 당시 해당 작가를 추천한 이종구 교수는 "두 개의 인체가 완전하게 복제된 자기표절이라 하더라도 맥락을 달리했을 때 결코 표절이 아닌 새로운 창작으로 보는 것은 오늘날 미술에서 상식적이다"라고 주장했다. 관점에 따라 '상식'이 묘하게 상충하는 상황이다.
공교롭게도 일부 미술계 인사들은 자기표절 혹은 자기복제를 두고 앤디 워홀이나 제프 쿤스와 같은 팩토리 아트 작가들의 사례를 동원하고 '관행'과 '상식'으로 포장한다. 그러나 표절 시비에 든 한국의 예술인들이 아트 팩토리를 창업했다는 광고는 본 적이 없다.

요즘 대학가에서 논문 표절이 종종 도마에 오른다. 사제의 갈등, 동료 교수들의 이합집산이 표절 분쟁의 씨앗이 되는 경우가 많다. 연구윤리에 대한 시비는 대부분 제보에 따르지 않고는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위조, 변조, 표절 등 연구부정행위는 학계 또는 정계의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하게 된다. 자정환경이 그만큼 중요해졌다. 결국 연구윤리는 속임수와 자기기만에 대한 경고다.
최근 지역을 대표하는 사학 인하대가 논문표절 시비에 휘말렸다. 신임 총장 선출과정에서의 갈등이 '부당한 중복게재' 논문 의혹으로까지 번져 자체 '연구진실성위원회'의 결과를 기다리게 됐다. 지난 4월에는 6년 전 한국기호학회 학술지에 실린 이 대학 교수가 쓴 4인 공동논문이 표절로 판정받은 사례도 있다. 해당 학회는 연구윤리위 규정에 따라 '논문의 직권 취소 및 인용금지' 처분을 공지했다.
그런가 하면 대학입시의 맹점을 이용해 일부 대학의 교수들이 자기 자녀 혹은 자녀 친구를 연구 공저자로 품앗이 등재하는 일까지 벌어져 교육부가 전수조사에 나선 바 있다. 빗나간 '부정' 행위다. 대학 연구부정 엘리트들의 지나친 모의를 보면 아마도 저자 교환 거래 정도는 횡행하는 관행이었을 것이다. 이를 두고 1백여 편의 논문을 국내외 학술지에 올리는 등 우수한 연구실적을 보이는 교수들도 표절시비에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는 '자기고백'도 있다. 단순한 표절 실수를 떠나 학술 업적에 쫓기는 '논문 테크니션'으로서의 관행이 작용한다는 추론이다. 연구·교육을 생명으로 여기는 교수의 본분이 계륵에 빠지는 순간이다.
우리 사회는 관행과 상식을 중시해 왔다. 그럼에도 대중의 눈에 비친 추악한 범죄 행위들이 저명성이나 권력으로 덧씌워지는 인상을 받는다면 '유명무죄, 무명유죄'의 새로운 딜레마 상태가 된다. 간혹 그 반대의 '유명유죄' 현상이 정상적인 사회 상식이란 지지를 받게 된다. 관행이 관습법의 범위를 넘어 법적 판결의 정당한 명분으로 활용되는 시대다. 하지만 관행은 사회구성원들이 모두 참여하는 정의를 전제조건으로 내세워야 한다.

대중은 보이는 대로 느낀다. 눈에 보이는 복제마저 예술의 이름으로 해석되지 않아야 관행이 정의롭다. 2006년 교육부총리의 논문 표절의혹 후 2007년 학술, 음악, 문학 분야 등에서 연구윤리지침, 표절방지 가이드라인이 마련됐다. 이미 오래 전부터 대학은 논문작성법 등을 통해 표절 예방에 대한 교육이 이루어져 왔다. 비뚤어진 관행과 이기적 도덕불감증을 터부시해야 시민의식도 합리적 상식으로 갈 수 있다. 저명성을 인정받고 유명세를 타는 리더들이 관행 이전에 엄격한 자기관리 잣대를 세우고, 사회 통념에 비친 대중의 여론에 귀 기울여야 한다. 표절, 금단의 열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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