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경호 언론인

 

남한산성의 이미지는 다채로웠다. 누군가에게는 연애의 추억이 깃든 곳이겠고, 더러 시들어가는 몸 일으키려 오르내린 곳으로 기억 될 거다. 주변의 맛집이나 자전거 라이딩. 심지어는 오래 전 이사 간 육군교도소를 떠올리는 이들도 있겠다.
저마다 간직한 한 움큼씩의 이미지는 김훈과 황동혁 감독의 동명 소설과 영화로 출렁였다. 소설과 영화는 나아갈 수도 물러설 수도 없는 닫힌 공간 안쪽에서 들끓었던 헛것으로서의 '말들'을 엮었다. 소설은 100쇄를 넘겼고, 영화는 380만 명이 봤다. 이로써 실재(實在)로서의 남한산성이미지는 소설과 영화 이미지로 뒤섞여 새로운 메시지를 낳았다.
'나아갈 곳도 물러설 곳도 없는 고립무원의 남한산성'. 나라의 운명이 갇혔다는 그 곳에서의 47일 시공간. 그 시공간을 견디는 이들의 갈등과 번민, 수모와 굴욕 등을 버무린 작품들은 짙고 강렬하면서도 허무주의적이다.

남한산성의 기원은 신라 문무왕 당시 벌어진 나당전쟁(672년) 때로 거슬러간다. 밀려드는 당나라 군대의 일차 저지선 임진강이 무너질 것에 대비해 남한강 주변에 성을 쌓았다. 그게 오늘날의 남한산성이라는 것.
이후 임진왜란 때 성을 새로 고쳤고, 광해군(1621)과 3년 뒤 인조 때 잇따라 증개축 했는데, 오늘날 남한산성의 모습은 '인조 버전'에 기초해 이후 업그레이드(?) 한 것이라 본다. 그리 보면 오늘날 남한산성 나이는 1346세 쯤 되겠다. 그 오랜 세월 성(城)은 오로지 적들을 막을 뿐 공격의 수단이 될 수 없는지라, 무너지고 쌓아올리기를 숱하게 되풀이 했을 거다. 물론 이는 세상 모든 성(城)들의 숙명이다.

소설과 영화로 뜬 데 힘입어서일까. 경기도가 남한산성을 '세계적 관광지'로 조성한다고 했다. 힘이 잔뜩 들어간 발표인지라 반갑다기보다는 걱정이 앞선다. '세계적 관광지 조성'이라는 맹랑한 포부와 과욕이 불러일으킨 허다한 '개발 참사'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들판과 산 등서니 위에 무너지고 쓰러진 채로 수많은 관광객들을 불러들이는 나라 밖 풍경을 떠올리노라면 걱정은 더욱 커진다. 결국 이런 걱정 하나마나일 게 뻔한 터, 그저 기우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