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경호 언론인

 

제주에 다녀왔다. 늘 머물던 게스트하우스에 묵었다. 주인장은 발코니 딸린 꼭대기층의 방을 내줬다. 그런데, 들를 때마다 발코니에 놓였던 재떨이가 사라졌다. 뭔 일인지 궁금했으나 묻진 않았다. 더 이상 발코니 흡연은 안 된다는 무언의 메시지. 솟구치는 흡연욕구는 결국 발품 팔아 해결했다.
사정은 렌터카도 마찬가지. 제한적이던 금연차량은 모든 렌터카로 바뀌었다. 덩달아 여기저기 오갈 동안 수시로 갓길에 차를 세워야 했다. 차 안 흡연 시 벌금 5만 원이라는 경고 앞에 별 수 없었다.
공항도 달라졌다. 몇 개 안되는 흡연실마저 줄었고, 죄다 건물 밖으로 쫓겨났다. 궁색한 공간에 남녀노소 뒤섞여 서로의 면전에 연기 뿜어대는 상황. 그나마도 고마워해야 하는 건지 헷갈렸다.
돌아보면 이 나라 금연정책 역사는 20여년. 그 새 흡연자들은 여러 장소에서 빠른 속도로 추방됐다. 2004년에는 혐연권이 흡연권보다 우선한다는 헌재 결정도 나왔다. 이런 추세라면 머잖아 최소한의 흡연권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것 아닌가 싶다.

실제 그간 금연정책을 보면 흡연자는 봉이다. 11조원 웃도는 담배 관련 세금을 거둬들이면서도 흡연자 권리는 일방적으로 침해당하고 있다. 혐연권이 흡연권보다 우선한다는 걸 고려해도 흡연자들을 향한 정책은 일방적이며 과잉이다. 심지어 공공장소의 흡연실마저 지나치게 적은데다, 일부러 모멸감을 주려는 것 아닌가 싶을 정도로 좁고 불편하다.
사실 2004년 헌재 결정은 흡연권도 기본권 중 하나로 봤다. 다만 흡연권이 비흡연권과 충돌했을 때 비흡연권이 우선된다고 봤을 뿐이다. 그렇다면 국가는 두 기본권이 갈등하지 않고, 균형을 이루는 정책을 펴야 했다. 그런데도 정책은 흡연자들을 일방적으로 추방하거나, 모욕주기 등으로 일관하고 있다.
물론 흡연자들이 대단한 걸 요구하는 건 아니다. 그저 흡연시설만이라도 제대로 갖춰 존엄성을 지킬 정도면 좋겠다는 거다. 흡연자는 쾌적하고 편안하게 담배 피우고, 비흡연자는 간접흡연 걱정 없게 하면 된다.
비흡연자인 연세대 김성수 교수 말마따나 '나는 네가 담배 피우는 게 싫지만, 흡연시설에서 피울 권리는 인정한다'는 게 민주주의고, 다원주의 사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