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현숙 아벨서점 대표

 

 

기자라고 하는 멋진 중년이 책방을 둘러보더니 말을 걸어옵니다. "나는 책방을 한다면 들어오는 입구부터 아이들이 들어오고 싶게 하겠는데…." "그렇죠. 한 가지를 오래한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시야가 좁을 수도 있어요. 그래서 오래 전부터 고민해오던 일인데. 우리처럼 여러 종류를 한 집에서 할 일이 아니라 이제는 정말 책을 좋아 하는 분들이 책방에 들어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책방을 하려면 돈이 얼마나 들까요?"라고 물어서 "돈 벌 일은 아니니 작은 돈으로 이 거리에 오시면 어떻겠냐?"고 답했습니다. 그렇게 열린 책방들이 없어져 가는 안타까움과 책을 좋아하는 마음을 비비고 가십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젠 책을 좋아하는 분들이 퇴직을 하고 책방을 운영하면 어떨까요?' 수없는 책들을 사고 팔면서 오래된 책인데도 새로 만나는 책들을 많이 보고, 끝없는 무한세계에 서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직장인들이 퇴직하면 60대인데, 책 세계에 즐거움을 아는 분들이 좋아하는 분야를 축으로 해서 지인들에게 책을 받고, 작은 가게를 구해서 책과 사람들을 만나는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어 간다면 '더불어 즐긴다'는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될 거예요. 예를 들면, 음악은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사랑방으로 되어 가다보면 자연스런 토론장이 되고, 알고 있는 것을 열어 보일 기회로 공연도 하고, 소리의 근원을 찾아 우리 삶에서 보아낼 눈을 찾아가는 학교를 넘어서 살아 있는 에너지의 장으로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문학, 철학, 기독교, 불교, 건강, 운동, 어린이, 청소년, 원서, 경제, 역사, 과학, 사진, 무용, 연극, 영화, 미술 등 책 손님들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저자들과의 소리 없는 대화를 이루는 책방 분위기를 수십 년째 젖어오면서 바라보는 희망입니다. 이를 열어낼 한 분야가 10평에서 시작하여 100평으로도 늘어날 수도 있는 각 분야를 좋아하는 분들이 자연스레 한 집 한 집 들어서다 보면, 이보다 더 좋은 책 마을은 없을 겁니다.
책방 속을 잠깐 소개하면, 시공을 넘어선 살아 있는 세계를 글로 묶어낸 책이, 생기로 다가 서는 손길에 잡혀 아낌없이 풀어내는 눈 맞춤이 불꽃을 일으키고, 소중한 돈을 지불하는 가슴의 열기를 보며 책방지기는 둘의 만남 속을 엿보며 웃지요. 그래서 셋이 빙글빙글거리지요.

지금 사회가 균형을 잃어간다는 우려는 빈부 격차보다도 앎과 삶의 차이가 심한 데서 온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다가온 위기의식을 행정이나 정부에 미루기보다는 책을 보고 살아왔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이 행동으로 움직여 나라의 격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간절해집니다. 우리 역사 배경에서 책을 보고 넓은 눈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자식이 잘되면 나라가 잘될 거라는 두 겹의 소망을 빚어간 처절한 역사의 절규 속에 키워진 장성함이지요. 김연아의 스케이팅은 우리 민족에 흐르는 기예입니다. 그러나 그의 지식과 철저한 노력이 없었다면 드러낼 수 없는 작품이지요, 그이와 같이 잠재된 개인 소유의 가치를 어떻게 세상에 풀어내느냐의 고민을 바라보면서, 책방에 서 있는 사람으로서 제언합니다. 아이들(미처 성숙이 덜된 사람들도 포함한)에게 꿈을 키워주고 심어줄 수 있는 책 마을 말입니다.

영국 헤이리 마을이 집값이 올라가는 어려움에서 반은 무너졌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지키려면 경제적 여유가 있는 분들이 가게터를 사거나 또는 시나 구에서 사서 고정된 가게세를 받는다면우리가 이어갈 책 마을은 안전한 마을로 되겠다는 생각도 곁들입니다.
생각을 행동으로 시도할 때, 흙을 손으로 만져 생기로 전해지는 자연의 동질감을 느끼듯, 몸 노동이 서툰 사람이 자신이 꿈꾸는 책방노동에 몸을 담는다는 것은 생기 있는 삶의 호흡을 얻는 일이지요. 손수 책꽂이를 만들어 책을 꽂을 때,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아주 밀접하게 주인이라고 책방에 인정을 받을 가슴이 생기거든요. 완전한 자주독립의 기본이지요. 정신의 생태계가 담겨 있는 책방은 책과 사람이 만나 도시 속 숲을 만드는 곳이기에 책 마을은 결국 사랑을 짓는 사람들의 도시를 꿈꾸는 일이지요. 배다리에서는 이미 시작되고 있습니다. 기다리겠습니다. 책 마을에 삶을 꾸릴 사람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