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봉래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교수

 

최근 인천과 관련된 자료를 조사하다가 매우 흥미로운 글을 읽게 되었다. 이름난 외과의사였을 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다양한 사회참여 활동을 하셨던 신태범 박사께서 생전에 언론을 통해 꾸준히 기고하고 연재했던 글을 그 후손들이 모아서 펴낸 <한옹 신태범 박사의 인천사랑>이라는 책이다. 집필 시간이 촉박하여 빠르게 훑을 요량이었지만, 한 꼭지 한 꼭지마다 관심을 끄는 내용이 워낙 많아 족히 한나절은 이 책을 붙잡고 있었다. 잔잔한 수필과도 같은 칼럼들 속에 그 당시 인천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어 1950~60년대 인천의 모습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특히 한국전쟁 직후 삶의 모습을 생생하게 엿볼 수 있었는데, 그중에는 그 시대 삶이 대충 이러했으려니 하고 예상했던 것과 비슷한 부분도 있지만,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내용도 상당했다. 예상하지 못했던 것 중 하나가 '커피'에 관한 글이다.

신태범 박사는 일찍부터 커피를 상당히 좋아하셨다고 한다. 1956년 8월 경인일보에 '커피'라는 글을 기고하면서 스스로를 '커피당(黨)'이라고 밝힐 정도였는데, 작고하기 몇 년 전인 1997년까지도 <우리 맛 탐험>이라는 저서의 한 꼭지로 꽤 긴 지면을 할애하여 커피 이야기를 들려준다. 덧붙여 1936년 의대를 졸업하고는 명동에서 모카와 브라질 커피를 사다가 유리로 된 투과식 사이폰으로 손수 뽑아 마셨다는 내용까지 나오는 걸 보니 정말 제대로 커피를 즐기신 것 같다.

유복했으리라 짐작되는 성장 환경과 외과의사라는 안정된 직업 등을 생각하면 그 시절 커피를 즐길 수 있는 소수의 그룹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기 쉽지만, 앞서 소개한 1956년 경인일보 기고문을 보면 딱히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아침 일찍이 해장 커피, 식사를 마치고 드는 식후 커피, 오후에 피로를 푸는 '티타임' 커피, 친구와의 정담이나 요담 때 드는 커피, 남녀 '랑데뷰'에 나누는 커피, 만날 시간을 기다리는 커피, 기타 각양각색의 커피, 해서 웬만한 사람은 하루 대여섯 잔 커피를 마시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였지만 아마 인천에서 '웬만한 사람'은 지금보다도 더 많은 커피를 마셨던 듯싶다. 태평양전쟁 때 수입금지되어 커피를 보기 힘들었다는 이야기, 미군이 진주하면서 재등장하여 미국의 '기형적 원조 덕택'에 미국에서도 소매가격이 '일봉도(一封度) 1달러 20센트'인 커피를 한 잔에 50환(?)을 내고 마실 수 있다는 이야기 등 커피라는 소소한 음료가 알려주는 사실들은 생각보다 꽤 많았다.

당시 50환의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 정확하게 가늠하기는 어렵지만, 6년 후인 1963년 화폐개혁에서 10환이 1원으로 바뀐 것을 생각하면 대략 5원 정도였으리라. 웬만한 사람이 하루 대여섯 잔을 마셨다면 25원에서 30원 정도인데, 그리 부담되는 값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원조 물자 중 하나로 커피가 그야말로 쏟아졌고, 그것이 척박한 시대였음에도 한국에서 하나의 기호품으로 자리를 잡는 데 큰 몫을 한 듯하다.
이렇게 우리 사회에 자리를 잡은 커피는 필자가 대학을 다니던 80년대 후반~90년대 초반 역시 강의동 층마다 커피자판기가 있을 만큼 많이 소비되었다. 물론 이 때 마신 커피는 흘러나온 원조 물자는 아니었겠지만 말이다. 한 잔에 100원 정도 했는데, 유학길에 올랐다가 2003년 귀국했을 때도 150~200원으로 크게 오르지 않아서 조금 놀라기도 했다. 그러나 요즘은 대학 캠퍼스에서 커피자판기를 찾기 어려워졌다. 대신 커피전문점이 학교에 들어왔고 교내 편의점에서도 온갖 종류의 커피를 팔고 있다. 또한 다국적 기업이나 중간 상인을 거치지 않고 제3세계 커피농가에 합리적인 가격을 주고 직접 사들여 공급하는 이른바 '공정무역 커피'도 늘어나는 추세이다.

커피라는, 어찌 보면 사소한 소재에도 이렇게 많은 예상 밖의 이야기가 숨어 있을 줄 몰랐고, 또한 역사의 단면이 하나하나 각인되어 있을 줄 몰랐다.
재작년에 지역학 포럼에서 만난 어느 지역 박물관 관장님께서 심혈을 기울여 시골을 돌아다니며 노인분들의 기억을 채록하고 다닌다는 소개를 하신 적이 있다. 언어와 공간의 기억들이 재조합되면서 당신도 몰랐던 것들이 발견될 때 대단한 희열을 느낀다고 한다. 의미심장한 사업이 아닌가 생각된다.
거친 대한민국의 근현대를 관통하면서 인천만큼 남겨 두어야 할 이야깃거리가 많은 지역도 흔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은 인천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의 현대사에서도 중요한 내용이리라. 우리도 인천을 빛낸 큰 인물들의 기억뿐만 아니라 소탈한 서민들의 기억들을 기록하고 보존하는 데 조금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