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수 논설위원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었다. 한가위도 1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성묫길 사이로 손짓하는 코스모스가 벌써 반갑다. 추석 연휴, 1박2일의 가을여행도 그립다. 미리 단풍놀이를 떠나고 싶다. 어느 해 가을인가, 고창 선운사 돌담위로 청명한 가을하늘이 높았다. 그곳 선홍빛 꽃무릇이 지면 단풍이 핀다.
역사학자 요한 하우징어는 모든 인간은 유희적 본성을 지닌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사람)라고 정의했다. 르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고 설파했다. 인간은 생각하는 주체였다. 사유하는 인간 '호모 사피엔스'로 부른다. 그런가 하면 오직 인간만이 사냥하고, 농사를 짓고, 유용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존재였다. 19세기 이후는 도구를 사용하는 '호모 파베르'가 인간의 모습으로 떠올랐다. 호모 루덴스는 효율적인 일에만 관심을 갖는, 노동중심 세계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담았다. 인간을 나타내는 '호모(Homo)'에 특징을 표현한 조어이고 개념들이다.

노동만이 중시되던 사회는 지났다. 사람들은 노동에 가려 평가절하된 '놀이'를 다시 음미하며 윤택한 삶을 희망한다. 여행을 떠나고 여가를 즐긴다. '유희적 인간'은 기능을 충족하는 데 머물지 않고, 그 이상을 뛰어넘어 생각한다. 시신을 땅에 묻는 단순한 무덤의 기능만 필요하다면 피라미드나 타지마할은 탄생할 수 없었던 건축물이다. 몸만 가릴 수 있는 옷의 개념으로는 패션문화를 창조할 수 없는 이치다.
호모 사피엔스는 사려 깊어서 행동적이지 않고, 호모 파베르는 부지런하고 계산적이어서 효용성 있는 대상에만 관심을 보일 뿐이다. 하지만 오늘날 호모 루덴스는 흥미 있고 새로운 놀이를 찾는 퍼놀로지(Funology)를 추구한다. 다양한 문화를 창출한다. 생산이 미덕이고 놀이는 악덕이라는 논리도 옛말이다. 놀이 속에서 창의적 사고가 싹틀 수 있기 때문에 '구글 캠퍼스'와 같은 업무공간이 가능했다. 새로운 효용가치가 재미에서 발현되고 공간, 광고, 영화, 패션 제품 등 인간의 일상에 구현된다. '재미없다'는 '안 팔린다'와 동의어로 될 수 있는 시대다.

삶의 가치도 여가·여행에서 얻게 된다. 여가는 노동시간과 생리적 필수시간을 제외한 인간 생활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여가가 문화의 뿌리로 인식되고, 여행은 여가문화콘텐츠의 영역을 구축했다. 선운사에 가고, 갑사계곡에도 가고, 가을 여행 속으로 호모 루덴스를 찾아 나서야겠다. 여유 있고 느린 도보 여행의 길, 인천둘레길 14개 코스에서 인천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