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관세음보살" 바닷길 따라 널리 퍼진 믿음

 

▲ 강화 보문사 천인대 모습.

 

 

▲ 중국 불교성지 보타도 해안가 전경.

 

▲ 중국 보타도 남해관음의 모습.

 

▲ 중국 보타산 보제사 전경.

 

▲ 보타도 전경- 중국 불교성지 보타도 해안가 전경

 

▲ 중국 보타도 보타산불교박물관에 소장된 관세음보살상의 모습. 당나라시대부터 청나라까지 관음상의 변천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관세음보살 '고통 벗어날 수 있다' 뜻

실크로드 타고 인도 너머 동아시아로

바다 항해자들 오가던 주요 항구마다

관음 살던 인도의 '보타낙가산' 재현

中 '보타산'·韓 '낙가산' 이름도 따와

강화 낙가산 보문사 선덕여왕때 창건

국내 '해수관음 성지'로 고려때 번창

보타도, 中 4대 불교 성지로 유적 가득

보제사·박물관 등 매년 수백만명 참배

남해관음상 세계 최고 높이 랜드마크


#"나무 관세음보살"

강화 석모도 낙가산 중턱에 자리한 보문사 뒤편 계단을 오른다. 한 여름 숨이 턱까지 차오를 무렵 마지막 한걸음을 옮겨 눈썹바위 마애관음보살상에 다다랐다. 높이 9.2m,폭 3.3m 규모의 거대한 관음상 앞에서는 수많은 불교 신자들이 저마다의 소원을 빌며 '나무 관세음보살'을 합장하고 있었다.

오후 늦은 시간. 관세음보살을 닮은 낙가산이 보문사를 품에 안은 채 붉게 물들어 가는 서해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다. 강화 보문사는 양양 낙산사, 금산 보리암과 함께 국내 3대 해수관음성지로 꼽힌다.

신라 선덕여왕 때 창건되었다는 보문사는 극락보전을 중심으로 관음전과 산신각, 범종각이 모여 있다. 사찰 입구에 위치한 커다란 석굴사원에는 신라시대 어부의 그물에 걸려 올라왔다는 설화를 간직한 23명의 나한상이 모셔져 있다.

이 절은 고려 때 크게 번창했다. 금강산 보덕굴에서 관음진신을 친견한 고승 회정(懷正)이 강화의 보문사를 찾아 관음도량으로 확신하고 서해의 대표적인 관음기도처로 만들었다. 보문사의 번창은 해상 실크로드와 깊은 관련이 있다. 인도를 출발해 말라카해협과 베트남, 중국 광저우까지 진출한 인도 상인들이 중국 연안을 거슬러 닝보를 거쳐 고려의 수도 개경의 관문인 벽란도까지 진출한 사실은 여러 기록에서 볼 수 있다.

벽란도의 관문 역할인 강화도 곳곳에서 인도 고승들의 설화가 전해오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울 것이다.

#바닷길의 수호신이 된 관세음보살

고대로부터 바다로 나간다는 것은 목숨을 건 모험이다. 항해 기술이 발달하지 않아 낮에는 태양과 지형지물을, 밤에는 별과 바람에 의존해 항해하던 시대에 바다에 대한 공포심은 모든 것을 삼킬 정도였다.

당나라가 신라로 사신을 보내려고 할 때 나서는 이가 없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다. 신앙심으로 무장한 승려나 막대한 이득을 챙길 수 있는 상인들이 바닷길의 선두에 선 것은 어쩌면 당연할 것이다.

고대인들은 이 같은 항해의 두려움과 무서움을 이겨 내기 위해 많은 신들을 소환해 냈다. 그 중에 으뜸은 관세음보살이었다. 기원전후 관음신앙은 남인도 '포탈라카'(Potalaka)란 곳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그 곳은 꽃과 나무가 가득한 작은 산이었다. 티베트 라싸에 있는 포탈라 궁도 이 이름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포탈라카를 음역하면 보타낙가산(寶陀洛伽山)이 된다.

불교의 대표적인 경전인 법화경에는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듣고 한마음으로 부르면 관세음보살이 곧 그 음성에 관하여 모두 벗어나게 하느니라"고 약속했다.

불교를 잘 모르는 사람도 관세음보살의 이름만 부른다면 어떤 고통에서든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관음 신앙은 가장 짧은 시간에 인도를 벗어나 동아시아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그리고 이 같은 폭발적인 대중적 인기의 원동력은 바로 해상 실크로드였다.

#중국 보타산과 강화 낙가산
고대 바닷길을 오가던 이들은 주요 항구마다 관음이 살던 인도의 보타낙가산을 재현해냈다. 중국 닝보 앞바다 '보타산'와 한국의 강화 '낙가산'의 이름도 보타낙가산에 따왔다.

이들은 닮은 점이 많다. 바닷가 섬에 위치해 있으며, 인도의 보타낙가산에서 이름을 따왔고 관음신앙의 중심지다. 가장 중요한 것은 두 곳 다 한중 해상실크로드 길목에 위치해 있다는 점이다. 해상 실크로드와 관음신앙의 연관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보타도는 중국 4대 불교 성지중 하나다. 섬 전체가 불교 유적으로 가득하며, 매년 수백만 명의 관광객과 참배객들이 이곳을 찾고 있다.

배를 타고 보타도 가는 길목에 '신라초'를 만났다. 고려도경에는 신라초에 대해 "옛날 신라 상인이 중국 오대산에 가서 관음상을 조각해 본국으로 돌아가려다 암초를 만나 배가 더 이상 나아가지 않았다.

이에 암초 위에 관음상을 도로 올려놓은 후에 갈 수 있었다. 이후 항해하는 선박은 반드시 이곳에 이르러 복을 빌었는데 감응하지 않는 때가 없었다"고 적고 있다. 이곳을 드나들던 수많은 신라와 고려의 승려와 상인들에 의해 관음신앙도 한반도와 일본으로 급속히 퍼져 나갔음을 알 수 있다.

보타도에 내리면 미니버스들이 기다리고 있다. 먼저 보제사를 찾았다. 이곳에서 가장 큰 사찰이다.

북송 때(1080) 건립해 청나라 강희(1699) 때에 보수해 현재의 모습으로 이어지고 있다. 예전부터 수많은 이들이 이곳에서 무사항해를 위해 불공을 올렸을 것이다. 이날도 엄청난 인원의 참배객들이 보제사를 찾았고, 이들이 올리는 간전할 기도가 사원을 가득 메웠다. 보제사 입구에는 '보타산불교박물관'이 있다. 해상실크로드 중심지였던 이곳에서 발굴된 각종 유물들이 가득했다. 특히 당나라시대부터 청나라까지 다양한 관음상 모습이 이채롭다.

보제사를 나와 '남해관음상'으로 이동했다. 보타산에서 제일 유명한 랜드마트다. '남해관음상'은 1997년 완공된 높이 18m(기단부까지 포함하면 33m)로 현존하는 세계 최고 높이의 관음동상이다.

70t의 구리(동)이 사용되었으며, 얼굴 부분에 6.5㎏의 순금이 들어갔다고 한다. 중국 전역은 물론 해외 곳곳에서 찾아온 참배객들은 관음상 앞에서 저마다의 소원을 빌고 있었다. 이곳에서 바닷가로 내려가면 관세음보살이 직접 나타났다는 '관음조'(觀音跳)를 볼 수 있다. 성스러운 곳이었지만 수많은 관람객들의 시끌벅적함에 순식간에 평범한 관광지로 변해 버렸다.

▲인천일보 해상실크로드 탐사취재팀
/남창섭 기자 csnam@incheonilbo.com
/허우범 작가 appolo2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