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어회 시키면 민어전은 서비스

'그 집'의 추천 메뉴는

 

●키조개 관자·우럭 구이

키조개 관자는 일본인들이 '가이바시'라 부르며 즐겨 먹어 한 때 전량 일본으로 수출됐을 정도로 국내에서는 귀한 음식이었다. 관자 또는 패주는 조개가 자신의 껍데기를 열고 닫기 위한 근육으로 부드럽고 쫄깃한 맛이 일품이다. 회로 먹어도 좋을 만큼 싱싱하지만 석쇠위에 올려 연탄불에 구워 노릇노릇해지면 씹는 맛이 더해진다. 관자는 살짝만 익혀서 먹는데 고추냉이에 간장, 참기름소금장, 초고추장, 깻잎, 배추 쌈 등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우럭은 대청도 대길호라는 낚싯배에서 잡자마자 손질해서 하루나 이틀정도 바닷바람에 말려 반건조 상태로 가져온 걸 써서 그런지 촉촉함이 살아있다. 두툼하면서 부드러운 속살이지만 기름기가 있어 꼬들꼬들하고 단단한 맛도 더해진다.

뱃살, 뽈살 등 부위별로 다른 맛을 내고 간도 맨입에 먹기에 좋을만큼 심심해서 김치에 싸먹어도 좋다. 껍질부분은 짭짤해서 밥반찬으로 그만이다.

 

●민어 회·지리·전

목포 앞바다에서 갓 잡은 활민어를 매일 고속버스로 3시간만에 직송받아 쓴다. 민어는 원래 여름철 보양식으로 잘알려져 있지만 박 대표는 가을민어가 훨씬 기름지고 살도 단단해서 여름 민어보다 맛있다고 귀뜸한다. 민어회 장은 고추냉이간장, 초고추장, 참기름소금장, 오이고추된장 등이 기본이고 노란 배추쌈도 곁들이다. 두툼하게 썰은 민어는 취향에 따라 장에 찍어먹거나 싸서 먹으면 다른 맛을 즐길 수 있다. 부레는 쫄깃하면서 말랑말랑한 묘한 식감에 기름장에 찍어먹으면 제맛이다.

지리는 민어에서 우러난 뽀얀 국물이 사골국처럼 깊고 순하면서 풍미가 살아있고 쑥갓, 미나리, 호박 등과 어우러져 조화로운 맛을 내며 해장에도 그만이다. 지리에 쓰인 살도 두툼하고 담백해서 밥을 말아 가정식으로 나오는 기본 반찬과 먹으면 한공기는 금세 먹는다.

민어회를 주문하면 서비스로 주는 민어전은 대개 호박전과 함께 나오는데 보들보들한 살점에 고소한 기름냄새가 입맛을 당긴다.

 

'목욕탕 타일' 테이블까지 원조집 그대로 이어받아

우럭·키조개 관자 등 생선구이와 민어회로 유명한 '마산집'은 숭의로터리에서 인천축구전용경기장 쪽으로 가다보면 자동차 유리 썬팅전문점이 마주보고 있는 첫 번째 골목안으로 옮긴 지금은 찾기 쉬워졌다. 첫번째 주인장이었던 송부연 할머니가 1966년부터 운영하던 원조집 자리는 현재 12층짜리 고급형 빌라가 세워져 분양을 기다리고 있다. 2016년 2월 이전한 현재 위치에서 한 골목 안에 있었지만 건물도 허름하고 간판도 잘 보이지 않아 처음 오는 사람은 골목 한두바퀴는 돌아야 겨우 찾을 수 있는 그야말로 '숨은 맛집'이었다.

'마산집'은 일본 태생인 송 할머니가 마산으로 시집온 뒤 남편이 세상을 뜨자 딸과 함께 인천으로 올라와 음식점을 개업하며 지은 이름이다. 올해 95세인 송 할머니가 10여년전부터 거동이 불편해서 2년정도 문을 닫자 2009년부터 현재의 박인숙 대표가 송 할머니로부터 이어받아 장사를 하고 있다.

박 대표는 지금은 팥빙수 등으로 잘알려진 '팟알'건물인 일본의 적산가옥에서 태어난 인천 토박이로 3살때 육군 상사였던 아버지를 따라 충청도로 가서 초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살다 다시 인천으로 돌아와서 계속 살고 있다. 박 대표는 지금도 가끔 '팟알'에 들러 3층 다다미방에서 창밖을 보며 어릴적 추억에 잠기곤 한다.
인성여고 출신의 박 대표는 석유회사에서 회계업무를 맡아 일을하다 당시 유명한 '국제복장학원'에서 의상디자인을 공부한 뒤 신포시장에서 '란'이라는 의상실을 23년동안 운영했다.

'마산집'하면 예나 지금이나 누구나 떠올리는 상징이 연탄화덕이 담겨 있는 흔히 말하는 70~80년대 '목욕탕 타일'로 장식한 독특한 식탁과 싱싱한 생선을 얼음을 깔고 보관하는 이집만의 이색적인 저장고다.

새로 옮긴 현재의 가게 홀에는 연탄화덕이 4명당 하나씩으로 3개가 나란히 놓여 타일식탁이 길어졌지만 원조집에는 연탄화덕 2개짜리와 1개짜리가 따로 놓여 있었다.

연탄화덕은 지난날의 정취를 되새기게 하며 벌겋게 올라온 연탄불에 구워 먹는 생선 맛이 운치를 더해준다. 연탄에 구워야 생선 맛이 최상으로 유지된다는 속설에 따라 이 자리만 고집하는 손님도 있다.

생선 저장고 역시 신선도를 살리기 위한 이집만의 방식으로 오랜 역사와 함께 정평이 난 맛으로 유명인사들이 자주 찾는다.

박 대표는 "우리 자식이나 손주들에게 먹이는 음식은 탈이 나지 않는 것을 준다는 심정으로 민어부터 갈치, 우럭, 키조개, 밴뎅이, 고등어, 농어, 병어, 광어, 대하, 조기, 전어, 대합 등 계절에 따라 상에 올리는 생선은 절대 국내산 최상급만 쓴다"고 말했다. 032-883-8849
 

▲ 사유진(오른쪽)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과 현광일 '마을공동체연구협동조합' 전 이사장이 생선구이와 민어회 전문 '마산집'에서 만나 춤과 현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사유진(오른쪽)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과 현광일 '마을공동체연구협동조합' 전 이사장이 생선구이와 민어회 전문 '마산집'에서 만나 춤과 현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유진·현광일 '현장사람들'의 말말말


"다큐멘터리의 기본은 좋은 사건이든 나쁜 사건이든 어떤 사건의 현장과 그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 또는 그 사람들이 느꼈던 감정들을 필름에 담아 다른 현장, 다른 시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는 거지요."

다큐멘터리 영화를 직접 쵤영하고 제작하는 사유진 감독과 교육, 마을공동체, 기업 등 사회 현장에서 일어나는 문제의 대안과 해법을 찾는 현광일 '마을공동체연구협동조합' 전 이사장이 인천 미추홀구 숭의동에 있는 생선구이와 민어회 등으로 유명한 '마산집'에서 만났다.

사유진 감독은 '햇살댄스 프로젝트'란 다큐영화를 찍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춤으로 '제노사이드(genocide)' 즉, 양민학살의 피해자와 유족들의 원혼을 달래주려는 것으로 총 10부작을 계획하고 있다.

"세계 곳곳에는 무장한 군인이나 경찰들에 의해 양민이 집단으로 학살된 현장이 많아요. 우리나라만 해도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4·3 제주항쟁 때 너무 많은 사람들이 희생을 당했지요. 티베트의 독립운동 과정과 베트남전 당시에도 수많은 양민들의 학살이 있었어요. 이런 참극의 현장을 찾아 '몸짓 언어'라는 춤으로 유족들과 함께 희생자를 위로하는 영화를 찍고 있지요. 이들에게 말로는 위로가 모자라요. 함께 일어나 손잡고 얼싸안고 춤을 추고 몸을 부대끼면 같은 느낌을 나눌 수 있어요."

사 감독은 지금까지 이 곳의 현장을 담은 4편의 다큐영화를 만들었다. 다음 촬영지는 영국인이 정착과정에서 원주민을 대량 학살한 호주로 요즘 호주 양민학살에 대한 자료를 찾고 시나리오와 기획을 준비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사 감독은 지난 1월부터 2월까지 '베트남전 양민학살'이 얼마나 끔찍하고 잔인했었는지,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피해자들의 증오심이 처참한 기록으로 남아있는 현장을 다녀와 '베트남 학살지 평화순례기'를 인천일보에 연재했다. 또 이 때 만든 다큐영화 '어느 한베평화재단 활동가의 평화기원 노래'가 최근 제3회 충주단편영화제 본선에 진출했다.

현광일 전 이사장은 <교사와 부모를 위한 발달교육이란 무엇인가> 책을 출간하는 등 교육 현장에서는 사람중심의 교육이 기본요소라는 점을 강조하며, '나, 너, 우리가 행복한 학교'를 만들어가고자 하는 이들에게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했다. 또 90년대엔 교육 현장을 다룬 창작극 작업 등 대안 교육에 관심을 보이며 대표적인 마을공동체인 '성미산학교' 교육과정을 기획했다.

두 사람은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고 공통점이 없을 것 같지만 현 전 이사장이 대학때부터 탈춤을 익혀 춤에 대한 공감대가 있었다.

"사 감독이 춤으로 양민학살 희생자를 위로하는 영화 얘기를 듣고 숙연함을 느꼈지요. 춤이란 언어가 없던 원시시대의 제사의식에서 비롯된 표현방식이지요. 말로는 공감할 수 없는 표현을 몸으로 나타내려는 시도를 보고 제가 한때 탈춤을 통해 사회를 바라보려 했던 경험이 떠올랐어요."

분위기가 무르익으면서 두 사람은 최근 심취해 있는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를 비롯하여 에리히 프롬, 사르트르, 칸트 등에 대해 열띤 공방을 주고받았다. 대화 열기가 달아오르자 현 전 이사장이 머리를 식히자며 재미있는 일화를 소개했다.

"도울 김용옥 선생이 하버드대학 유학 초기에 논문작성 때문에 고민하고 있을 때 먼저 와있던 영문학자 김우창 교수가 '쓰고 싶은 내용을 말하라며 도올선생이 불러주는대로 바로 영문으로 타이핑을 해줬다'는 얘기를 김 교수에게 직접 들었어요. 또 김 교수가 '미국 문명사'로 논문을 1000쪽을 써내자 대학에서 조금 줄여달라고 했대요."

현장에서 갓 올라온 싱싱한 민어회를 먹으며 다큐, 교육, 마을 등 현장을 중시하는 두 사람은 춤에 대한 공감과 열띤 토론에 일화를 곁들여 묘한 맛으로 어울리고 있었다.

/글·사진 여승철기자 yeopo99@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