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뻔하고서 알았죠, 손글씨가 운명인 걸"
"죽을 뻔하고서 알았죠, 손글씨가 운명인 걸"
  • 이아진
  • 승인 2018.09.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장대식 한국예쁜손글씨 POP협회장 '한국전통명장' 선출
교통사고 뒤 꿈꾸던 공부시작 … 개인전 열고 中교류도
▲ 손글씨를 통해 지역사회 주민들과 소통하고 싶다는 장대식씨.

"아름다운 글씨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도 하고, 감동을 주기도 해요."

한국예쁜손글씨 팝(POP)협회 회장으로 인천지역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장대식(57)씨는 올해 대한민국전통명장으로 선출됐다.

그의 작품을 보지 않은 이는 없을 것이다. 우리 일상에서 없어서는 안 될 물병에, 아이들이 즐겨 먹는 과자에, 삶의 지혜를 얻기 위한 책에 그의 작품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롯데 '옥수수수염차'부터 '찰떡파이', '팅클', '원기홍삼'까지 패키지 디자인을 맡아서 진행했다. 이처럼 우리 실생활과 밀접하게 있지만, 무심코 지나갔던 '글씨'는 그에게 '운명'이었다.

"전라남도 해남의 한 섬에서 태어난 저는 어릴 적부터 해변에 가서 모래 위에 나뭇가지로 글씨를 새겨 넣곤 했어요. 삼촌이 글씨와 그림을 그렸어요, 그리고 외할아버지는 서당에서 훈장을 하셨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제가 손글씨를 업으로 한 것이 환경적인 영향이 컸던 것 같아요."

그는 초등학교 6학년 교내 서예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농협 주최 저축 글짓기에 나가 1등을 하며 손글씨에 대한 관심을 키워갔다. 하지만 정작 사회에 나와서는 생계를 위해 보험회사에서 일하게 된다. 그는 17년 정도 보험회사 영업부에서 일을 하다가 1996년에 큰 교통사고를 당한다. 1년 정도 입원생활을 한 그는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게된다.

"당시 정말 이렇게 죽는구나 싶었어요. 이후 나를 위해서 그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어린 시절 좋아했던 '손글씨'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관련해서 강의를 듣기 시작했어요."

그는 타고난 재능과 함께 오랜 기간 동안 세필, 손글씨, 글씨교정 분야를 연마하다가 1999년 신포동에서 처음으로 손글씨 학원을 차린다.

"처음에는 만류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시대의 흐름을 잘 타서인지 학원은 순풍적으로 운영됐어요. 2006년에는 '중국 북경 POP학교' 명예 교장을 맡게 됐어요. 이후 중국과의 교류도 왕성하게 전개하고 있어요."

그는 남들과 다른 나만의 손글씨는 없을까 고민을 하다가 2001년 우리가 흔히 아는 '반짝이 글씨'를 창안해 낸다. 이후 2007년부터 꾸준하게 실전 펜글씨 교정, 예쁜글씨 POP, 캘리그라피 등 실용서를 총 6권을 출판한다.

현재 예쁜 손글씨 POP 강사로 활동하면서 공예프로그램과 실용적인 작품으로 전시회, 박람회, 지역축제 등에서 손글씨 재능기부를 하고있다. 지난달에는 인사동에서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한글이 가진 고유적 문화 코드가 디지털 시대의 대중에게 더욱 다양하게 활용되길 바라고 지역사회에 도움이 되는 그날까지 이 활동을 이어나가고 싶어요."

/글·사진 이아진 기자 atoz@incheonilbo.com

▲ 인천일보, INCHEONILBO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