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 건너온 '스파이' 번화한 개경에 '깜짝'
황해 건너온 '스파이' 번화한 개경에 '깜짝'
  • 남창섭
  • 승인 2018.08.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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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상실크로드를 가다] 900년 전 송나라의 대고려 정보보고 <고려도경>
▲ 황비창천명동경. 동경표면에 고려와 송나라를 오갔던 국제무역선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경기도박물관
▲ 송나라 사절단의 항해 상상도.

 

 

▲ 선화봉사고려도경.

 

▲ 1972년 여름 중국 취안저우에서 발견된 송나라 시대 국제무역선의 모습. 취안저우박물관에 전시된 이 배는 길이가 24m정도로 고려를 방문한 송나라 사절단이 타고 온 상선과 모양과 크기가 비슷하다.

 

▲ 중국 취안저우에서 발견된 송나라 시대 국제무역선을 재현한 모습.

 

▲ 수월관음도(보물1426호). /아모레퍼시픽미술관

 

▲ 청자 양각 모란 넝쿨 용무늬 매병. /국립중앙박물관

 

▲ 초조대장경(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국보 256호). /경기도박물관

 

▲ 청자 기린모양 향로. /아모레퍼시픽미술관

 

▲ 청자 배모양 변기. /인천시립박물관

 

 

▲ 경기도박물관의 <900년 전 이방인의 코리아 방문기 고려도경> 특별전 모습.

 

▲ 경기도박물관의 <900년 전 이방인의 코리아 방문기 고려도경> 특별전에 전시된 고려시대 도자기.
송나라 사절단 방문 항로.

 

"1123년 6월12일(음력) 아침. 국제 항구인 고려 예성항(벽란도)에 거대한 선박 여러 척이 들어선다. 뱃머리에 백로 모양의 익조가 조각된 송나라 사절단을 태운 신주(神舟) 2척과 상선 6척 등 총 8척이 주인공이다. 송나라가 고려 사절단 파견에 맞춰 위세를 과시하기 위해 새롭게 건조한 세계에서 가장 큰 선박이다.

중국의 위세에 맞서 고려의 준비도 만만치 않았다. 사절단을 맞이하기 위해 벽란도에는 거대한 깃발과 중무장한 기병·의장대를 포함한 고려 최정예부대 1만명이 해안선을 따라 도열했다"


900년 전 고려를 방문한 송나라 사절단 일원인 서긍이 고려의 모든 것을 조사해 황제에게 바친 정보 보고서 <고려도경>에 실려 있는 벽란도 입국 당시 모습이다.

1123년 송나라 황제 휘종은 고려와의 관계 개선을 위해 역대 최대의 사신단 파견을 명령한다. 고려 방문을 위해 당시 세계 최대 규모의 선박 2척을 새로 만들었는데 길이가 무려 94m에 달했다. 당시 동아시아를 오가던 국제무역선 길이가 30m 정도였으니 그 규모는 대단했다. 현재 당시 선박을 유추해 볼 수 있는 곳이 있다. 바로 중국 취안저우박물관에 전시중인 송나라 때 상선이다. 1974년 발견된 이 상선은 길이가 24m 정도로 사절단에 포함된 상선과 크기와 모양이 비슷하다.

아울러 사신 158명으로 구성된 사상 최대 규모의 사절단도 꾸렸다. 이 가운데에는 서긍을 중심으로 전문기술을 갖추고 그림을 잘 그리는 정보 분야 전문가들이 포함돼 있었다. 이들은 방문 기간 동안 고려의 풍습을 빠짐없이 수집하고 기록해, <고려도경>을 편찬하는데 핵심 역할을 수행한다. <고려도경>은 이름처럼 글과 그림이 포함된 정보 보고서이다. 초판본은 총 40권으로 한국의 고대 역사를 시작으로, 개경의 시설과 궁궐, 관복과 관부, 주요 인물을 다루었다. 의례와 의장 용품, 불교, 풍속, 사절단의 공식 행사, 사절단의 숙소와 생활용기, 사절단이 오간 바닷길, 고려 배에 대한 이야기, 중국과 동일한 고려의 문물을 설명했다.

#명주에서 벽란도까지…황해 사단항로를 건넌 송나라 사절단
특히 <고려도경>에는 환황해를 중심으로 해상 실크로드의 모습이 잘 담겨 있다. 송나라 사절단의 이동경로는 명주(지금의 닝보)에서 벽란도에 이르는 환황해를 횡단하는 항로로, 항해일지에 기록된 내용으로 당시 상황을 소상히 알 수 있다.

이 기록에 따르면 1123년 5월16일 사절단을 태운 배가 명주를 출발한다. 19일 정해현에 도착해 7일 동안 용왕에게 제사를 지내고 무사안녕을 빌었다. 25일 명주 앞바다의 심한 안개로 인해 겨우 보타도의 심가문 포구에 정박했다. 이곳에서 전해져오던 보타도 관음상에 대한 얘기도 실려 있다.

"옛날 신라 상인이 중국 오대산에 가서 관음상을 조각해 본국으로 돌아가려다 암초를 만나 배가 더 이상 나아가지 않았다. 이에 암초 위에 관음상을 도로 올려놓은 후에 갈 수 있었다. 이후 항해하는 선박은 반드시 이곳에 이르러 복을 빌었는데 감응하지 않는 때가 없었다"

보타도 앞바다에 있는 이 암초는 지금도 '신라초'라고 불린다.

사실상 대양항해의 시작은 28일 보타도 심가문 항구를 출발하면서부터다. 서긍은 당시 상황을 "선박의 행렬이 해문을 벗어나면 하늘과 땅이 서로를 머금고 있어 위아래 모두 푸르름 일색이고 주위에는 구름 한 점 없다"고 묘사했다.

서긍은 바닥이 평평한 고려선박과 다른 중국 선박의 특징도 잘 설명하고 있다. "항해할 때에는 바다가 깊은 것이 두려워하지 않고 오직 얕아서 박히는 것을 두려워했다. 배의 바닥이 평평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조수가 빠지면 기울어 쓰러져 구할 수 없기 때문에 항상 끈에 납추를 늘어뜨려 바다 깊이를 헤아려 본다."

밤에는 오직 별만을 보고 앞으로 가다가, 별조차 보이지 않게 어두워지면 나침반을 써서 남북을 헤아려 항해를 계속했다. 나침반을 중국 4대 발명품을 하나로 고대로부터 사용됐다는 기록이 있지만 항해에 일반적으로 이용된 것은 11세기 북송시대로 추정된다. 이후 인도, 아라비아 상인을 거쳐 유럽에 전래된다. 서긍의 기록을 보더라도 당시 대양 항해에 널리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5일간의 대양항해 끝에 6월2일 한반도 남쪽 끝 협계산(소흑산도)에 도착한다. 고려 영해로 진입한 후 서해연안을 따라 이동했고 배가 군산도에 이르자 접반관으로 김부식이 나와 환영했다. 마도(안면도)와 합굴(영종도), 용골(석모도)를 지나 드디어 6월12일, 사절단은 예성항에 도착했다.

사절단의 행차는 떠날 때에는 남풍을 이용하고 돌아올 때는 북풍을 이용했다. 돌아오는 길도 순탄치 않았다. 7월15일 벽란도를 출발해 24일 군산도 부근에 정박했지만 바람에 막혀 14일 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8월20일 흑산을 지나 대양으로 나섰고 보조키와 정타가 부러지는 등 여러 차례 위험한 상황을 이겨내고 23일 중국의 수주산을 지나 42일 만에 명주에 도착한다.

#고려청자 비색 빛깔이 더욱 좋아졌다 … 서긍의 눈에 비친 고려의 모습
서긍이 본 개경의 모습은 상상 이상이었다. "성곽들이 우뚝우뚝하여 실로 쉽사리 업신여길 수 없다"거나 "궁성 주변에 유명한 사찰만 24곳이 있으며, 왕궁에 필적할 규모의 사찰도 10곳 이상 있었다"며 관심을 보였다. "특히 별명이 큰 절[大寺]이었던 광통보제사에는 60m가 넘는 거대한 탑과 백동 1만5천근(약 1.5톤)으로 만든 범종이 있다"면서 "중요한 불경으로는 화엄경과 반야경이 있고 사소한 것은 숫자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고 놀라워했다.

그 때 서긍이 사찰에서 본 대장경 중 하나가 경기도박물관에서 지난달 26일부터 시작한 <900년 전 이방인의 코리아 방문기 고려도경> 특별전에서 전시되고 있다. 바로 국보 256호인 초조대장경(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그 주인공이다. 고려시대 불화의 최고 걸작인 보물 1426호 수월관음도(아모레퍼시픽미술관)도 함께 전시 중이다.

서긍이 가장 큰 관심을 보인 건 바로 고려청자다. 중국 역대 청자 중 최고로 평가받는 북송시대 여주요(여요) 청자와 고려의 비색청자를 함께 보고 기록한 유일한 인물이다.

그는 고려청자에 대해 "중국의 도자기와 대체로 유사하다"며 깎아내리려 했지만 "도기의 빛깔이 푸른 것을 고려인은 비색이라고 한다. 근래에 만드는 솜씨와 빛깔이 더욱 좋아졌다"고 높게 평가했다. 그 중에서도 참외 모양의 술병이 가장 아름다워 이를 그린다고 했다. 현재 가장 유사한 것으로는 국보 94호 '청자과형병'으로 추정되며 이번 특별전에서도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청자 양각 모란 넝쿨 용무늬 매병'을 선보이고 있다.

또 그가 고려에서 최고의 걸작으로 설명한 고려청자가 있다. 바로 사자와 유사한 상상의 동물인 산예 모양으로 만든 청자향로가 그것이다. 국보 60호 '청자사자형향로'와 거의 비슷하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사자모양 대신 기린모양으로 뚜껑을 만든 '청자 기린모양 향로'(아모레퍼시픽미술관)을 전시하고 있다.

서긍이 고려를 다녀간 얼마 후 남송의 태평노인이 지은 <수중금>에서 "건주의 차, 촉의 비단, 정요의 백자, 절강의 차 등과 함께 고려 비색은 모두 천하제일이다. 다른 곳에서는 따라 하고자 해도 도저히 할 수 없는 것들이다"라며 고려청자를 극찬했다.

서긍은 또 나전과 자수그림 등이 매우 정교하게 제작되었다며 관심을 보였다. 고려 사람에 대해서는 "옛 사서에 따르면 고려의 풍속은 사람들이 모두 깨끗하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지금도 여전히 그러하다. 그들은 항상 중국인이 때가 많은 것을 비웃는다"고 묘사했다.

하지만 대부분 서술에서는 중화사상을 벗어나지 못했다. "고려의 차와 술이 형편없다"며 불만을 터트리는가 하면 "고려는 여러 오랑캐의 나라 가운데서 문물이 발달하고 예의 바른 나라로 불린다"며 중국의 우월감을 감추지 않았다.

▲인천일보 해상실크로드 탐사취재팀
/남창섭 기자 csnam@incheonilbo.com
/허우범 작가 appolo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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