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기획자 유명상
▲ 강화의 문화 바람은 세대를 잇는 매개체이다. 강화 문화를 삶 속에 짊어지며 살아가는 유명상씨의 강화 5년, 두려움에서 막연한 희망으로 바뀌었다. 그 곳에서 펼치는 유명상씨의 문화 꿈을 들어봤다. 유명상씨가 포즈를 취한 이 곳, 스트롱 파이어는 단순한 식당이 아닌 유명상과 강화, 문화와 세대를 잇는 가교이다. 스트롱 파이어 식구들은 협동조합 청풍을 통해 강화 문화바람을 일으켰고 향초로 꾸며진 텀블벅을 통해 일상을 이어가고 있다.


[강화에 우뚝선 '스트롱파이어']
특산품으로 요리 … 누구든지 환영
단순한 식당 아닌 문화·세대 가교
협동조합 '청풍' 통해 축제도 열어

[아름다운 도전? 말리고 싶다]
현실적·체계적 지원 부족한 사회
시작 5년 만에 겨우 두려움 떨쳐
비장한 각오 대신 즐거움 찾기로


'도전은 아름답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다. '청년은 청춘을 빛나게 살아야 한다'는 교과서적 표현에 빛을 기대하며 곁눈질 없이 학창시절을 달렸다. 이십대를 지나 삼십대인 지금 손아귀에 남은 것은 아직도 '할 수 있다'는 막연한 기대감이다. '도전과 성공, 청춘' 이 모든 단어는 듣기만 해도 가슴을 쿵쾅 때리지만 나에게만 비켜가는 것 같은 느낌은 뭘까.

"도전, 좋지만 당장 내일 뭘 먹고 살지 막막합니다." 솔직한 그의 말이 더 와닿는다. 삐딱한 학창시절을 지나 열정의 20대를 살았고, 긍정의 30대를 거침없이 질주 중이지만 미래의 불안감은 어쩔 수 없다. 아름답기만 한 도전보다는 현실의 '힘듦'을 얘기하는 진솔함이 더 매력이다. 그게 청춘이다.

차라리 솔직해져 세상에 소리치는 게 낫다는 생각, 그 속에서 더욱 열심히 살겠노라는 다짐, 강화에서 유명상(35)씨는 도전의 아이콘이 아닌 화합과 세대의 징검다리와 같다. 유씨의 궤적을 쫓아본다.

'Strong Fire'.
첫 인상이 멋스럽다. 자유와 동의어 같은 외모는 문화를 매개로 활동 중이라는 유명상(35)씨에게 걸맞다. 첫 인사 때 "어서오세요. 스트롱 파이어 입니다"라는 소개는 늘상의 가게 명칭을 알려주는 것이라 여겼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유명상씨에게 빠져들은 '그들의 문화 읽기'는, 만나기 전 "청년의 유쾌한 도전이 멋지고 아름답고 기대된다"는 선입견이 깨졌다.

스트롱 파이어. 말 그대로 강렬한 불꽃처럼 어제와 오늘, 내일을 살겠노라는 다짐과 같다. 그 속에 담긴 뜻은 놀랍다. 'strong'(强, 강할 강), 'fire'(火, 불 화) 한자로 강화, 유명상씨가 뿌리내린 곳인 바로 강화(江華)이다. 언어유희를 승화시켜 강화에서 자신들의 옷을 입은 것이다.

유명상씨는 "활동하는 이 곳의 명칭을 정할 때 게스트하우스(아삭아삭 순무)를 찾은 한 청년이 농담처럼 건낸 스트롱 파이어를 지금도 쓰고 있죠"라며 "쓰다보니 딱 입니다"라고 말했다.

강화의 여름은 거침 없다. 강화에 터를 잡은 주민도, 이 곳을 찾은 관광객도, 모두가 강화를 온 몸으로 즐길 준비가 돼 있다. 그래서 강화대교, 초지대교를 건너며 강화에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설렌다. 몸 속에 조금씩 아드레날린이 퍼지며 강화에서 벌어질 잠시 후 내 일상이 기다려진다. 5년 전 강화에 문화 기반을 닦기 시작한 유명상씨도 같지 않았을까.

"절 유 마담이라고 불러주세요." 유명상씨에게 선생님, 사장님, 기획자 등 일상의 언어로 그의 호칭을 물었다. 답변은 '마담'이다. 스트롱 파이어라는 강화 청년 문화의 한 축인 이 곳이 간단한 맥주와 수제 안주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니 마담이란 호칭이 어울릴법하다. 그러나 함께 하는 문화 동지들을 보듬고 지켜주겠다는 유명상씨의 속내가 담긴 호칭 같아 울림이 적잖다.

강화읍내는 오래된 것과 새로움이 함께 한다. 여느 고도(古都) 같이 예스러움이 앞장서고 새로운 것이 신식 병정처럼 도열해 있다.

유명상씨가 그 곳에 세대 간 징검다리가 되어주고 있는 것은 문화라는 거대한 이데올로기가 아닌 사람과 사람의 향기를 퍼트리겠다는 소망에서 첫 발을 내딛었기 때문이다.

유명상씨는 "스트롱 파이어에서는 강화에서 생산되는 여러 농산물로 요리를 하고 강화를 찾은 사람이나 강화에 사는 사람이 스스럼 없이 어울리는 곳 입니다"라며 "함께 하는 것, 그게 첫 시작입니다"고 강조했다.

유명상씨와 3명의 친구가 강화에서 '무엇'을 찾은 것은 2013년. 강화 풍물시장에서 화덕 피자로 명성을 쌓으며 '먹고 살 궁리'를 했고, '문화'라는 고민과 '생계'라는 현실의 막막함에 고민을 할 때 강화 토박이인 꿈 많고 고민 깊은 친구가 더해져 6명이 강화에서 장사를 하며 문화를 키워가고 있다.

협동조합 '청풍', 멋스러운 이름으로 지난달 '세대를 잇다'라는 행사를 열었다. 길거리 공연을 열고 이 곳에서 강화 삼대 영상제가 마련됐다.

유명상씨는 "신포살롱에서 활동하며 막연히 강화가 주는 이름의 매력에 빠졌습니다"라며 "문화관광산업에 관심을 갖게 됐고 지금 이 곳에서 문화와 생계를 조화롭게 꾸리며 살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신포살롱은 인천서 유명하다. 인천청년문화공동체 신포살롱의 유 마담이 지금 강화 청풍 유 마담이다. 유 마담이 신포살롱에서 뿌리 내린 문화적 도시재생은 인천의 화두가 됐고, 카페와 할인쿠폰이 뿌리 내린 인천의 명동 '신포동'에 불빛이 되살아났다.

"강화도를 맨 처음 찾을 때는 막막했죠. 먹고 살게 가장 큰 문제였죠. 그런데 강화의 어머니는 따뜻하시잖아요. 밥은 안굶었냐며 늘 물어주시던 안부에 이 곳에서 활동할 수 있겠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유명상씨와 동료들은 강화 약쑥과 순무, 밴댕이 등 이 곳 특산품이 어우러진 어설픈 프로의 장사를 시작했다. 그는 청년들이 경제적이나 문화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생태계를 꾸리고 싶었다. 그리고 요즘은 강화에서 청년이 하는 문화 바람이 아닌 강화 주민 모두를 대상으로 하는 세대간 교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강화 삶 5년, 인천토박이인 유명상씨에게 이제는 자그마한 용기가 솟는다. 처음 강화에 발을 내딛었을 때 막막함은 5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내일'을 엿볼 수 있게 됐다. 그래서 그가 터 잡은 이 곳을 좀 더 폭넓고 깊게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강화 삼대 영상제에 담긴 '어서오시겨, 강화', '우리는 강화에 삽니다', '로컬릴레이강화 이야기' 등은 다양한 세대들의 각양각색 삶이 담긴 영상이다.

"처음 강화에서 문화 축제할 때만 해도 강화풍물시장에서 장사하시는 어머님들이 가게 문을 닫고 함께 축제를 할 것이라는 상상은 할 수 없었습니다. 이제는 강화 축제 퍼레이드 일원이 되신 어머님들을 뵐 때 강화 문화 바람의 가능성과 세대 간 화합이 느껴집니다."

하지만 이것이 '성공'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남들이 걷지 않는 길, 청년의 문화 도전에 '성공'이 가능한걸까. 지금 세상이 청년들에게 던지는 묵직한 화두를 유명상씨에게 던졌다. 문화를 화두로 살았던 십 수년의 그에게도 문화와 도전, 성공은 당황스러운 현실일테다.

그는 "세상은 문화로 성공한 청년, 이 중에서도 성공해서 스타가 된 청년을 바랍니다. 그런 청년이 몇이나 되겠고, 그런 청년을 위해 세상은 무슨 도움을 주나요?"라고 되물었다. "청년들에게 물고기가 많은 호수에서 좋은 낚시대를 주며 도전하라는 세상이라면 몰라도, 물고기가 없는 호수에서 좋은 낚시대를 주며 도전하라는 게 요즘"이라며 한숨섞인 비교를 했다.

"제 나이가 딱 아이엠에프를 겪으며 경제적으로 화목하지 않은 가정, 학자금에 허덕이게 된 생활, 바늘구멍 같은 입사를 겪었습니다.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창업을 하라고 하죠. 세상이 창업하기 어려운데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답답합니다."

유명상씨는 얼마 전 함께 도전해보고 싶어하는 친구와 민박집에서 묶던 손님에게 '왜 이렇게 힘든 길을 가려 하시냐'며 등떠밀어 말렸다고 했다. 그는 "강화생활 5년 만에 겨우 내일이 보이게 됐는데, 이런 일을 여러 사람들에게 선뜻 나서보라고 권유하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일명 '몸빵(맷집)'에만 기대는 청년 문화, 청년 창업보다는 현실적이고 체계적인 환경에서 청년을 세상으로 인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에게는 다행히 함께 할 동료가 있어 버티고 있다. 매주, 머리를 싸매며 먹고 살고 문화 하는 고민으로 '힘'들지만, 그런 '힘듦'을 즐기는 것도 이제는 일상이 됐다.

"청년의 문화, 도전의 지금은 무조건 뼈를 묻어야 하는 비정한 각오보다는 그 안에서 재미나게 일할 수 있는 편안함을 찾는 것입니다".

/글·사진 이주영·이아진 기자 leejy96@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