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직거부한 조선의 연암과 '헬조선' 청년 삶 오버랩
일·관계·여행·공부 키워드로 '명랑한 백수강령' 강조
▲ 고미숙 지음, 프런티어, 288쪽, 1만5000원


"백수는 인류의 미래다. 세상 앞에 당돌한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의 푸름을 배우자."

고전평론가 고미숙이 이번에는 '백수로 살기'를 제안한다. 체감실업률이 40%에 이른다는 뉴스에 이어 기업의 고용은 분기마다 감소한다는 뉴스도 있다. 직장을 구하지 못하는 청년세대에 이어 베이비부머 세대도 은퇴하고 실업자가 된다. 실업난을 마주한 청년도 은퇴를 맞이한 장년도 모두 '백수의 삶'을 준비해야 한다.

그런가하면 최근 4차 산업혁명은 '노동없는 미래'를 예고하고 있다. 인공지능과 로봇이 사람의 일자리를 대신해, 종국에는 인간이 하는 노동의 대부분을 대체할 것이라 한다. 당장 실현되는 52시간 근무제는 우리에게 '남는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 묻고 있다. 경제상황이 어렵다고 하지만 국민소득은 3만달러 시대에 진입했고 '저녁이 있는 삶'을 말하고 있다.

우리가 맞이해야 할 '잉여 시대'는 벌써 코앞에 왔지만 그것을 활용하며, 더욱이 행복하게 누릴 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렇다면 이렇게 늘어난 '잉여 인간'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생각해보면 소크라테스, 공자, 부처, 노자 등의 사회경제적 지위는 사실 '백수'다. 조선에도 이처럼 살았던 사람이 있는데 바로 연암 박지원이다. 호사스런 삶을 누리기에 충분한 배경과 능력을 가졌음에도 과거 급제를 포기하고 청빈한 삶을 택했던 연암. 그에게는 어떤 다른점이 있었을까?

저자는 남다른 자존심으로 무장했던 연암의 태도를 본받으라고 말한다. 돈 없이도 '쫄지 말고' 호탕한 자세를 유지하며 제도 속 권력, 부의 유혹으로부터 스스로 해방될 줄 알았던 연암의 삶처럼.

저자는 연암의 청년 시기와 요즘의 청년들을 서로 오버랩하며, 독자들에게 연암의 발자취로부터 배울 수 있는 '백수의 삶'을 우리에게 일깨운다. '일, 관계, 여행, 공부'의 키워드로 청년의 삶을 구분한 뒤 연암이 이들을 다룬 방식을 따라가며 그의 당돌한 자신감을 배우라 말한다.

특히 저자는 '백수'라는 단어를 새롭게 정의한다. 대체로 '백수'는 '쓸모없는', '무가치한'의 의미와 더해져 부정적인 이미지를 담아 쓰이지만 이에 벗어나서 '자신의 삶을 보다 주도적으로 디자인하는 프리랜서'로 다시 보기를 제안한다.

이와 함께 읽고, 말하고, 쓰며 새로운 스토리를 창조하는 '크리에이터'가 될 것을 주문한다. 자신의 생애 리듬을 알고 스스로 삶의 과제를 조정하며, 세상을 자유로이 탐구하고 규칙적인 노동에서 벗어난 경제활동을 시도하라고 말한다. 화폐에 얽매인 삶을 살지 말고 관계가 바탕이 된 행복한 삶을 살라고 강조한다.

부록으로 '명랑한 백수 생활을 위한 100개의 강령(명백한 강령)'을 거론하지만 실은 '경쟁은 지루하다. 너희끼리 해라', '정규직에게 연민을! 퇴준생에게 존경을!', '백수의 비전은 무병장수', '백수의 미덕은 명랑과 슬기!' 등 16개의 강령만 밝히고 나머지는 독자들이 덧붙여 채우길 요구한다.

/여승철 기자 yeopo99@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