튼튼한 것 속에서 틈은 태어난다
서로 힘차게 껴안고 굳은 철근과 시멘트 속에도
숨 쉬고 돌아다닐 길은 있었던 것이다
길고 가는 한 줄 선 속에 빛은 우겨지고
버팅겨 허리를 펴는 틈
미세하게 벌어진 그 선의 폭을
수십 년의 시간, 분, 초로 나누어본다
아아, 얼마나 느리게 그 틈은 벌어져온 것인가
그 느리고 질긴 힘은
핏줄처럼 건물의 속속들이 뻗어 있다
서울, 거대한 빌딩의 정글 속에서
다리 없이 벽과 벽을 타고 다니며 우글거리고 있다
지금은 화려한 타일과 벽지로 덮여있지만
새 타일과 벽지가 필요하거든
뜯어보라 두 눈으로 확인해 보라
순식간에 구석구석으로 달아나 숨을
그러나 어느 구석에서든 천연덕스러운 꼬리가 보일
틈! 틈, 틈, 틈, 틈틈틈틈틈… …
어떤 철벽이라도 비집고 들어가 사는 이 틈의 정체는
사실은 한 줄기 가냘픈 허공이다
하릴없이 구름이나 풀잎의 등을 밀어주던
나약한 힘이다
이 힘이 어디에든 스미듯 들어가면
튼튼한 것들은 모두 금이 간다 갈라진다 무너진다
튼튼한 것들은 결국 없어지고
가냘프고 나약한 허공만 끝끝내 남는다





나는 빈틈이 있는 사람들이 좋다. 그런 사람들은 늘 관용적이어서 맘이 편하고 이것저것 따지지도 않아 둥글둥글 웃음으로 대할 수 있다. 그러나 빈틈 없는 사람들을 만날 때면 나는 다소 맘이 불편해진다. 그들은 웬만해선 손해 보려고도 하지 않고 양보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은 따지고 보면, 오랜 시간 동안 틈을 만들어 온 사람들이었다. 단단한 생이 결국 한 점 허공임을 스스로 깨달아, 모든 것은 갈라지고 무너지고, 튼튼한 것들은 결국 없어지고 가냘픈 허공만 남는다는 것을 진즉에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빈틈 없이 촘촘한 완벽의 결을 견지하는 사람들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은 좀체 가슴의 틈을 열어주지 않아, 그들에게로 스며들어갈 마음의 길을 찾을 수 없다.
세상을 떠받치는 모든 튼튼한 가치와 문물들은 결국 나약한 한 조각 허공에 불과하다고 이 시는 말한다. 세상에 태어나 허공으로 돌아가는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나, 우리가 바라보고 만지는 것들은 길고 가는 한 줄 틈에 의해 서서히 와해되고, 결국에는 한 조각 허공으로 귀결되고야 마는 삶의 순리를 우리는 언제나 겸허하게 받아들이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번 여름은 참으로 뜨거워 땀을 뻘뻘 많이도 흘리며 힘들었는데, 이것 또한 계절의 틈이 만들어낸 현상이라고 생각해 보니 맘이 편하다. 다가올 겨울이 아무리 추워도, 어떤 이별이 와도, 스멀스멀 기어다니는 생의 틈들과 해후하며 이제는 견딜 수 있을 듯하다.

/권영준 시인·인천부개고 국어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