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환 논설실장

 

술꾼들간에 요즘같은 때 어떤 안주가 좋으냐로 쓸데없는 입씨름이 벌어졌다. 별 생각없이 감자탕을 시켰다가 혼이 났다는 어느 술꾼의 넋두리가 단초였다. 감자탕이 끓어 오르며 김을 뿜어내자 에어컨 바람까지 뜨거운 김이 되어 안기더라는 것이다. 그제서야 둘러보니 그네들만 감자탕을 끓이고 있더란다. 결론은 안주가 무어든 주방에서 다 만들어 내 오는 것으로 모아졌다.


▶역대급 폭염에 대한 보도가 치고 나가는 마라톤 중계방송을 보는 듯 하다. 마침내 기상관측 111년 이래의 기록도 무너뜨렸다. 문제는 기록 경신에만 만족하지 않을 조짐이라는 것이다. 언젠가는 내리막에 들어서겠지만 아직은 오르막만 타고 있는 대단한 폭염이다.


▶1994년 여름의 더위는 아직도 기억에 새롭다. 폭염 일수 31.1일, 열대야 일수 17.7일이었다. 올해 폭염과는 달리 습기까지 더해져 체감 더위를 높였다. 당시 늦추고 늦춰 광복절에 휴가를 갔는데도 밖에 나오니 '이런 게 백숙인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더위 속에 북한 김일성 주석 사망 소식까지 겹쳤다. 국내 언론들이 이미 한차례 대형 오보를 저질렀던 뉴스인지라 확인 또 확인해야 했다. 개인적으로는 하필 그 더위 속에 발품이 많이드는 서울시청으로 출입처가 바뀌어 더 진땀을 뺐던 그 해 여름이었다.


▶지난 달 말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난 '폭염 병아리' 소식이 압권이었다. 베란다에 둔 계란판에서 병아리가 스스로 껍질을 깨고 나왔다니. 굳이 어미 닭의 품이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다. 폭염이 탄생시킨 그 생명도 난폭하지는 않을까. 강릉시는 버스정류장이나 터미널, 역 등에 대형 얼음덩어리를 비치해 시민들이 만져보게라도 했다고 한다. 요즘 한 낮의 버스정류장에는 인기척이 없다. 멀리서 버스가 오는 게 보이면 그제서야 하나 둘 주변의 그늘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탈원전 정책으로 멈추게 했던 원전을 다시 돌린다고 한다. 폭염으로 전력수요를 감당 못해서다. 필리핀이나 일본보다도 더 덥다고 한다. 원전을 대신케 한다던 태양광 발전은 폭염의 덕을 보는지 궁금하다. 올해 폭염이 혹시 날씨가 이 나라의 탈원전 정책을 한번 떠보는 거나 아닌지 모르겠다.


▶그래도 7월이 가고 8월도 하루하루 날을 까먹고 있다. 저토록 요란한 매미 울음을 어느 순간 귀뚜라미가 대신하지 않겠는가. 누군가가 댓글을 올렸다. '너무 춥다며 어서 여름이 왔으면' 하던 지난 겨울을 떠올리자고. 이 또한 지나가리라. 2018 여름을 배웅할 채비를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