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 부산 출생

1955 서울대 미술대학 회화과 졸업

1962 인천교대 부임(이후 33년 봉직),「일반 미술(공저)」 펴냄 (이후 「유아조형지도론」등 저서 8권 역서 2권 펴냄)

1963 「아동화 발달의 심리학적 고찰」 발표(이후 논문 30여편)

1970 미협 인천지부장

1973 경기도 문화상 수상

1984 인천대 대학원 미술교육 전공 졸업

1987 일본 광도대학 초청교수

1989 교육부문 대통령상 수상

1995 인천교대 정년퇴임, 문교부

   교육과정 심의위원, 문교부 교과서 편찬 심의위원, 교육개발硏 교수, 인천시 자문위원, 인천시 문화상 심의위원 역임

현재 인천교대 명예교수, 인천대 대학원 강사, 국제미술교육학회(INSEA) 세계이사 국제안목 갖춘 한국미술교육 자존심

단 미술분야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지만 미술에서 창작인(作家)은 이 분야에서 최고의 위상을 가진다. 그래서 우리는 미술을 말할때 늘 작가와 작품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시킨다. 그러나 한 작가 탄생의 이면에는 그를 작가이게 만든 미술 교육이 있었다.

 노재우(盧在又)교수는 평생동안 이러한 미술교육에 관하여 연구하고 실천해 왔다. 말하자면 그는 1955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한후 고교교사를 거쳐 1962년 인천교대로 적을 옮기고 33년동안 이 학교에서 미술교육자로, 미술교육 연구자로 우리나라 미술교육사를 정리하고 향방을 설정하는 한편, 교사 교육에 전념해 온 것이다.

 미술교육 이론가로서 그의 위상은 출중하다. 미술교수 이론과 미술교육사에 관한 논문만 30여편에 이르고, 10여권의 저서와 역서, 수차에 걸친 국제 학술세미나 참가, 문교부 교육과정 심의위원 등 우리나라 미술교육의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해온 것이다.

 특히 「전인교육으로서의 미술」과 「인간은 나면서부터 서투른 예술가」라는 주장과 「아동 중심의 미술교육」, 「미술과 교수-학습이론」 그리고 「아동의 자아표현과 심미성, 정서, 창조성」등의 발달을 꾀하는 이론 접근은 단순한 「쟁이」의 양산에 급급한 우리의 미술교육 실태를 꼬집고 대안을 제시한 모범적 사례로 기록될만 하다.

 아울러 그가 1994년 발표한 「한국 학교 미술 교육 백년사적 고찰」이라는 연구는 우리나라 근대 미술교육사를 심도있게 파헤친 것으로 향후 후학들에게 중요한 지침이 될 것이다.울대학교 유근준 교수(미술 평론가)는 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노교수님은 한국미술교육 연구의 자존심입니다. 미국, 일본, 대만, 필리핀 등지에서 만난 미술계 지도자들(미술교사, 미술교육학자, 미술대학교수, 미술교육 행정가등)은 한국의 미술교육에 관심을 보일때마다 언제나 「한국의 노재우교수님」에 관해 물었습니다. 처음에는 놀랍고 어리둥절한 경험이었지만 이제는 교수님의 존재에 대한 저들의 관심속에 노교수님이 「한국미술교육의 자존심」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에 조금도 의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말하자면 노재우교수는 하나의 학문으로써 「미술교육」에 대한 끊임없는 애정과 열정으로 연구활동을 거듭하였고 일본어, 영어등 능숙한 외국어를 바탕으로 외국교육 시찰과 세미나 등에 참가하여 미술교육정보를 교환하는 한편 「국제 미술교육학회(INSEA)」의 세계이사로서 학회를 주도해 왔다. 특히 교육부 교육과정 심의위원, 국정교과용 도서 심의위원 등 초·중등 교육의 중요한 분야에서 전문성을 발휘하고 미술교육의 정상화와 창의성개발을 위한 교육을 선도해온 것이다.년 가까이 인천에 거주하면서 노재우교수가 인천미술계에 끼친 공로도 빼놓을 수 없는 점이다. 1968년에는 경기예총부지회장, 미협인천지부장 등을 역임했고 「경기예총」지 7호에 「원시시대의 회화제작」이라는 논문을 발표하여 미술인들에게 작가로서의 교양을 쌓는데 이바지했다.

 1970년대 초에는 3대에 걸쳐 미협지부장을 역임하며 각종의 전람회에 「소속시대」 「기억」등의 작품을 발표한다. 더욱이 「경기 예총」 9호에서 당시 미술인들의 작품을 분석한 평문 「전진과 도약을 위한 내성실험」은 이 지역 미술계를 자극하고 창작의욕을 고취시켰을 뿐 아니라 타성적으로 작품활동을 하기보다는 책임성이 뒤따르는 작품을 제작토록 고무하는 계기를 만들기도 한다.

 아울러 인천교대의 「교우 동인전」의 창설멤버로서 꾸준히 작품을 출품하고 인천 각종 전람회 기본기에 충실한 수채화를 출품해 왔다. 노재우 교수는 이렇게 미술교육자로, 교육행정가로, 연구자로 그리고 지역 화단을 이끈 지도자로서의 공로를 인정받아 1973년에는 경기도문화상(미술부문)을 수상하기도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노재우교수의 업적이라면 인천교육대학에서 예비교사들을 33년간 가르치면서 배출한 경향 각지의 교사들에게 끼친 영향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강의는 아동사관의 형성을 촉구하는 것으로 일관했을 뿐만 아니라 아동을 자유롭게 하고 아동의 잠재능력을 최대한 발휘토록 하자는 내용이었다.

 이는 허버트리드가 주장한 「예술을 통한 교육(Education through Art)」과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창조성이야 말로 인간이 갖는 최고의 속성이므로 인간다움을 형성하려면 예술활동의 조장을 통한 교육이 최고의 교육이라는 내용이었다.

 아울러 그는 미술교육을 담당한 시내 초등학교 교사들의 모임을 통한 연구활동, 그리고 미국, 중국, 일본, 호주등에서의 미술교육 세미나에 빠지는 일이 없이 참여하여 국제적 안목을 넓히고 이를 바탕으로 우리 미술교육의 이론을 정립시키는데 힘써왔다.

 특히 한국전쟁 전후 미술교육의 파괴상을 인식하고 내한한 피바디교육사절단 미술교육 담당관 돈샤드로우 박사와 함께 창조주의 미술교육을 임상실험함으로써 과거 도제교육을 반성하였다. 즉 그는 미술과 교과설정의 취지에서 벗어난 기량중심 교육을 경고하였고, 기계문명의 와중에서 상실되어가고 있는 인간성 회복을 주장하는 인문주의 미술교육을 강조해왔다.

 이런 그의 지론들은 각급학교에서 교육하는 수많은 교사들에게 영향을 끼쳐 오늘날 우리 미술교육의 새로운 지평을 개척할 수 있는 향방을 제시해 주었다고 볼 수 있다.

 노재우 교수는 고희에 접어들고 있는 오늘날에도 컴퓨터앞에 앉아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교환하고 저술에 힘쓰는 한편 세계 유수의 미술교육 세미나에 자비로 참가하면서 후학들에게 인문주의 미술교육의 새로운 장을 열 수 있도록 이끌고 있는 것이다.〈이경모·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