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실은 결핵퇴치기금을 모으기 위해 발행하는 증표이다. 일종의 성금표시로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발매하며 우표와 함께 우편물에 붙인다. 모양과 크기 도안등이 비슷 우표 대용으로 착각하기 쉬우나 그렇지가 않다. 우표와는 별도로 첨부하는데 사서 붙이고 아니 붙이고의 여부는 성의에 달려 있다.

 우리나라에서 실을 처음 시작한 사람은 미국인 선교사 셔우드 홀 박사이다. 해주에서 의료활동을 하던중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출국당해 인도등지에서 활동하다가 15년전 다시 노구를 이끌고 태어난 땅 한국에 돌아온 이이다. 그의 양친 역시 선교사로서 우리나라에 일생을 바쳤다. 특히 그의 부친 윌리엄 제인즈 홀은 평양에서 청일전쟁때 만연한 전염병 진료에 전념하다가 자신도 감염 쓰러진 분이다. 모친 로리타 홀 역시 의료선교사로서 서울의 동대문부인병원을 경영했는데 그 분원이 오늘의 인천기독병원이다.

 셔우드 홀이 우리나라의 결핵퇴치에 헌신하게 된 데에는 그만한 동기가 있었다. 모친의 조수였다가 우리나라 최초의 여의사가 된 에스더 김이 결핵으로 희생된 데 충격을 받아서이다. 그때 소년 셔우드는 한국에서 결핵과 싸우는데 일생을 바치기로 결심했다. 미국에 건너가 의학을 전공하고 돌아와 해주에 구세병원을 세워 결핵환자들을 치료했다. 당시는 결핵이 성행 우리나라의 청소년환자가 많아 망국병으로 불리던 때였다.

 1932년 셔우드 홀이 만든 우리나라 최초의 크리스마스 실은 남대문이 그려져 있다. 후에는 그네 연날리기 등 우리 어린이들의 전승놀이를 담았다. 그러니 자연 일제의 주목을 받았다. 사실 그의 첫 도안은 거북선이었다. 일인들의 방해로 도안을 바꾸어야 했는데 남대문으로 해서 은근히 한국의 방어를 상징했던 것이다. 그런가 하면 일제는 인쇄된 실의 서기연호를 일본연호로 고치라고 압수하기도 했다.

 지금 크리스마스 실의 계절인데 IMF 영향으로 팔리지 않는다고 한다. 단 몇백원의 표시조차 어렵다 함은 성의의 문제이다. 더욱이 최근에 결핵환자가 늘어나고 있다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