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국 논설위원
'가을이 오면/ 눈부신 아침햇살에 비친 그대의 미소가/ 아름다워요/ 눈을 감으면/ 싱그런 바람 가득한 그대의 맑은 숨결이/ 향기로와요~'
고(故) 이영훈 작사·작곡, 이문세가 노래한 '가을이 오면'을 들을 때마다 1987년 가을이 떠오른다. 대학에 다니던 그 때 라디오에서, 카페에서 이 노래가 많이 흘러나왔다. 상큼한 멜로디였지만 노래를 들을 때면 우울한 감정이 먼저 올라오곤 했다. 그 해 6월의 기억 때문이었다.

6월의 어느 날, 폭풍우 같은 시위대가 휩쓸고 지나간 광장들은 적막했고 을씨년스러웠다. 차도,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동인천역, 서울역 광장엔 밀가루를 뿌려놓은 것 같은 최루탄가루와 깨어진 보도블록만이 나뒹굴었다. '6월 항쟁'의 결과 국민들은 '언론자율화'와 '대통령직선제'를 쟁취했다. 대학생 박종철·이한열 열사가 뿌린 밀알이 피워낸 '민주화의 꽃'이었다.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당시 많은 대학생과 노동자들이 의문사를 당했고, 여기저기서 떠오른 주검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슬프고도 잔인한 87년의 가을을 보내게 해주었다.

"종철아 잘 가그래이, 아부지는 아무 할 말이 없데이…."
아들이 물고문으로 사망한 뒤 아버지 박정기씨는 넋 나간 모습으로 이렇게 내뱉었다. 31년 전, 자식을 가슴에 묻은 채 평생 한 맺힌 삶을 살던 박 선생이 지난 달 28일 영면했다. 천국에서 아들을 만난 그는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을까. 앞서 23일엔 노회찬 정의당 의원이 세상을 떠났다. 1980년대 민주화운동에 투신했고, 6월 항쟁 이후엔 인천지역민주노동자동맹(인민노련)의 중앙위원을 맡는 등 온 생애를 순수하고 정의로운 삶으로 일관했던 그였다. 왜 하늘은 아름다운 사람을 먼저 데려가는 것인가. 여야 정치인과 온 국민이 비탄 속에 그를 보냈다.

가을이 오고 있다. 오는 7일이 '입추'이다. 지금 폭염이 기승을 부리고 있지만 무더위는 이내 물러가고 머잖아 선선한 바람이 불어올 터이다. 2018년 가을의 문턱, 고 박정기 선생과 노회찬 의원의 명복을 충심으로 빌며, 그 분들께 87년 가을의 음악을 헌사한다.
'하늘을 보면/ 님의 부드런 고운 미소 가득한 저 하늘에 가을이 오면/ 노래 부르면/ 떠나 온 날의 그 추억이/ 아직도 내 마음을 슬프게 하네/ 잊을 수 없는 님의 부드런 고운 미소 가득한/ 저 하늘에 가을이 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