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환 논설실장
편의점 업계에 이어 중소 제조업계에서도 최저임금 불복종 선언이 나왔다. 울산중소기업협회와 전국중소상공인협회, 대구중소상공인협회 등이다. "최저임금 정한 사람들이 경영 한번 해봐라"라는 얘기도 나온 모양이다. 3년 이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 벌금형이라는데. 인천 지역 아파트들에서도 경비원·미화원 감축 안내문이 등장했다고 한다.
▶최저임금은 노동자가 인간다운 생활을 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임금을 법으로 강제하는 것이다. 1894년 뉴질랜드의 강제중재법과 1896년 오스트레일리아 빅토리아주의 공장법이 그 효시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선진자본주의 국가들로 번져갔다. 한국은 1986년에 도입돼 1988년 첫 시행에 들어갔다.
▶1988년부터 3년간 최저임금 심의를 취재했다. 이른바 노동자 대투쟁의 열기가 가시지 않은 때였다. 공익위원으로 나온 고 박세일 전 서울대 교수의 정연한 논리 전개가 돋보였다.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도 당시 경제기획원 국장으로 공익위원이었다. 문재인 정부와 갈등을 빚었던 김영배 전 경총 부회장은 경총 조사부장으로 사용자 위원이었다.
▶한국 경제가 고도 성장을 구가하던 시절. 노동자 대투쟁의 여파로 임금인상도 가팔랐다. 시급 600원대의 최저임금은 '임금 마지노선'의 상징 정도로 받아들여졌다. 정부 내에서도 경제기획원의 목소리가 워낙 높은 시절이었다. 사용자측인 경총과 최저임금심의위는 사무실도 이웃(서울 마포)해 있었다. 한국노총만 강 건너 여의도에 있던 시절이다. 젊은 기자의 눈에는 정부와 경총이 노총을 몰아붙이는 느낌이었다.
▶그런 최저임금이 '을과 을', '을과 병'의 갈등을 부추기는 시대이다. '선의의 역설'이다. 15세기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자 스페인의 예수회 소속 선교사들도 남미로 진출한다. 그러나 스페인 정복자들의 남미 원주민들에 대한 학살·학대를 목격하고는 충격을 받는다. 남미 인디언들을 구해내기 위해 아프리카 노예 수입 정책을 앞장 서 추진한다. 결과는 역사에 남은 인도주의적 대참사다.
▶한국에서는 과거 한 때 동반성장위원회가 대기업의 두부 제조업을 금지시켰다. 이듬해 국내 콩 재배 농가들이 들고 일어났다. 중소 두부제조업체들은 값싼 수입콩만 써 국산 콩의 판로가 막혀버린 것이다. 좀 무리를 해서라도 최저임금을 올려 놓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문제는 그 적정선이 어디냐는 것인데 쉽지 않은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