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18세 투표권' 요구 높아져 … 도 곳곳서 모의 진행·캠페인
OECD 국가 중 19세 제한 유일 … 국회서 인하 논의됐으나 무산
▲ 지난 6월13일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맞아 수원역 11번 출구 앞 문화광장에서는 18세 참정권 실현을 위한 6·13 청소년모의투표 운동본부가 주최하는 '청소년모의투표'가 진행됐다. 이날 참여한 청소년들은 기초단체장과 교육감을 기표해 투표함에 넣는 등 투표권을 행사했다. /김은희 수습기자 haru@incheonilbo.com
올해 6·13지방선거를 치르면서 '청소년 참정권' 요구 목소리가 높아졌다. 경기도 청소년들은 교육정책 대상자로서 경기도교육감을 직접 선택해보는 것은 물론, 도민으로서 경기도지사를 스스로 뽑아보는 모의투표를 진행했다. 이처럼 '선거'라는 민주주의 축제 속에서 청소년들은 여전히 '만 19세' 예비 시민에 머물러 있다.



▲'청소년 참정권' 주목해야 하는 이유

6·13 지방선거 기간 교육감 후보들은 '깜깜이' 선거라는 꼬리표에 시달렸다. 후보 간 정책대결보다는 인지도나 성향 등에 따라 승부가 갈렸고, 언론사별 교육감 후보 여론조사결과에서는 모름·무응답 비율이 1위를 넘어서기도 했다.

인천일보가 ㈜리얼미터에 의뢰해 지난5월 8~9일 이틀간 실시한 '6·13 경기도교육감 선거 여론조사'에서도 당시 이재정 교육감 후보가 35.5%의 지지율로 1위를 달렸으나, 지지후보가 없거나 모른다고 응답한 부동층 비율은 52.6%에 달했다.

지난 달 4일 전국 시·도교육감 후보 20명은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가 마련한 '학생의, 학생에 의한, 학생을 위한 교육실현을 위한 정책협약식'에 참여해 이들을 지지했다. 이 자리에서 당시 교육감 후보들은 학생인권 보장을 약속하고, 청소년 참정권 알리기 일환으로 학생들이 진행 중인 '기호 0번 교육감 후보 캠페인'을 응원했다.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는 청소년 없는 교육감 선거의 진정성 문제를 제기하면서, 서울시선거관리위원회 앞에서 '기호 0번 청소년 교육감 후보 출마 선언'을 단행했고, 교육감 선거에 청소년 투표권 행사를 촉구하는 삭발집회를 벌이기도 했다. 교육정책 대상자인 청소년들은 직접적인 이해당사자로서 교육감 선거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경기도 청소년들의 참정권 확대 움직임

청소년 참정권에 대해 경기도 청소년들도 목소리를 내며 동참하고 있다.
지난 2일 광명운산고 학생들은 전교생 825명 중 772명(투표율 93%)이 참여한 자체 모의투표에서 37.7%의 지지율로 당선된 이재정 교육감에게 직접 당선증을 수여했다. 이날 자치행사는 학생들이 직접 기획·실시했다.

지난달 20일에는 고양시고등학교학생회장단연합 '해늘'과 부천시고등학교학생회장단연합 '크레센도'가 6월12~13일 양일간 온라인투표를 통해 청소년 참정권에 대해 찬반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설문에 응답한 청소년의 80.9%가 찬성했다. 이들은 7월 중 청소년 참정권 실현을 위한 캠페인을 벌일 계획이다.

선거 당일인 지난달 13일에는 수원, 안양 등 도내 9개 지역에서 온·오프라인 '청소년 모의투표'가 실시됐다. 모의투표에 참여한 청소년 유권자 5433명 중 1885명(34.7%)이 지지한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이 뽑혔다.

이 청소년 모의투표는 실제 투표 절차와 동일하게 운영됐으며, 투표 참여대상은 온라인을 통해 '유권자' 등록을 마친 만 18세 미만 청소년들이었다.

한국YMCA와 '18세 참정권 실현을 위한 6·13 청소년 모의투표 운동본부'가 전국 30곳에서 청소년 모의투표를 실시했다.
이와 관련,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지난해 3~4월 전국 고등학생 1430명을 대상으로 '청소년 정치참여 욕구 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65.9%가 투표 연령을 18세로 낮추는 것에 동의했다.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별다른 움직임이 없는 상태다. 지난해 2월 국회에서는 선거연령을 만 18세로 낮추자는 방안을 논의했으나, 합의에 이르지 못했으며, 청와대가 선거 연령을 18세로 낮추는 내용의 선거제도 개혁안을 담은 대통령 개헌안을 발표했으나, 의결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지난 5월24일 끝내 무산됐다.

우리나라를 제외한 모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은 18세 혹은 그보다 낮은 연령의 국민들에게 선거권을 부여하고 있다. 실제 미국, 영국, 일본, 독일 등 의회민주주의가 정착된 국가들은 18세가 되면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우리나라만 유일하게 선거연령을 만 19세로 두고 있다.

한편 국회입법조사처가 지난 5월 발행한 '청소년 정치참여 현황과 개선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선거권과 정당가입 연령을 19세로 제한하는 공직선거법과 정당법 조항은 기본적으로 청소년을 미성숙한 존재로 보는 시각 때문"이라며 "헌법상 기본권인 참정권을 제한할 정도로 미성숙한 존재인가에 대해 고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선거연령 인하와 청소년의 정치에 대한 관심 향상, 청소년의 입장과 견해를 반영할 수 있는 정치적 통로 마련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보고서는 강조했다.


▲ 신기석

▲신기석 초등학교 교사 "학생이 원하는 교육현장 형성"

"참정권이 주어진다면 교육감이 학생을 교육주체로서 진정성 있게 바라보며 가볍게 여기지 않을 것."

15년째 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신기석 교사는 "청소년 참정권이 주어진다면 교육감이 학생을 교육주체로서 가볍게 여기지 않을 것이고, 진정한 학생 중심 교육의 장이 형성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신 교사는 "민주시민을 주제로 한 교육이 예전보다 많이 확대되고 있다"며 "개인적으로는 민주시민 수업을 늘려 학생들에게 성숙한 시민의식 형성을 위해 도움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참정권과 관련 학교에서도 많은 준비를 하고 있다면서 "어른들이 뽑은 교육감에 따라 아이들이 받는 수업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에 학생이 원하는 정책이 제대로 반영되는지, 어떤 경로로 교육감한테 의지가 전달되는지 불분명하다"고 지적했다.


▲ 최석재

▲최석재 학부모 "다양한 계층 목소리 들을 필요"

"우리 민족이 위기에 빠졌을 때, 분연히 떨치고 일어났던 사람들이 누구였나."

고등학교 2학년 자녀를 둔 최석재씨는 "역사적으로 보면 학생은 바른 세상을 이끄는 에너지 역할을 해왔다"면서 "우리 민족이 위기에 빠졌을 때, 분연히 떨치고 일어났던 사람들도 학생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갖은 고문에도 뜻을 굽히지 않은 유관순 열사도 학생 신분이었고, 탑골공원 만세운동, 6·10만세운동, 광주학생항일운동 모두 학생들이 그 중심에 서 있었다"며 "어른들이 우려하는대로, 대중 추수주의에 빠질 수 있는 나이이긴 하지만 대의민주주의는 다양한 계층의 여론을 잘 수렴해야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선거권 확대를 통해 고등학생까지 투표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 이한결

▲이한결 청년 "고교생부터 준비할 사회과정"

"청소년 참정권은 고등학교에서부터 시작해야 할 사회에 나갈 준비 과정 중 하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번 지방선거에서 첫 투표권을 행사한 이한결씨는 "학생에게도 선거권을 보장해야 한다. 고작 한 살 낮추자는 것을 이야기 하는 것인데, 그 정도는 충분히 가능하지 않나"라고 말했다.

이씨는 "고등학생들의 경우 단순히 TV를 통해 뉴스를 보는 것이 아니라 팟 캐스트나 스마트 폰을 활용해 다양하게 실시간 뉴스를 접한다"면서 "많은 양의 뉴스를 접하는 청소년들이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그는 "졸업 후 처음으로 투표를 하고, 선거권이 나에게 주어졌다는 생각을 하면서 책임감을 느꼈다"며 "선거홍보물들도 관심 있게 보게 되는 등 자연스럽게 정치에도 눈을 돌리게 된다"고 말했다.

이씨는 선거연령 인하 논의가 지지부진한 것에 대해 "지금 학생들이 교육방식이랑 연결돼 있다고 생각한다"며 "지금의 고등학생들은 여전히 자신들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경우가 많지 않고, 자신의 진로를 탐색하는 기회도 적다"고 설명했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막상 사회에 던져지게 될 때면 많은 경험을 하게되는데, 그 중 선거권은 사회에 나가야 하는 준비 과정으로 고교 때부터 이뤄지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안상아·이경훈 기자 asa88@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