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환 논설실장
지난 주말 피하기 어려운 결혼식이 2개나 됐다. 그것도 대구(낮 12시)와 서울 강남(오후 4시 반)에서다. 먼저 서울역으로 가 KTX를 탔다. 예식장에서 점심까지 먹고 다시 동대구역에서 오후 1시 52분발 SRT에 올랐다. 고속철도가 좋기는 좋았다. 다만 게으른 사람까지도 몰아붙이는 점만 빼고는.
▶고속철도는 일본의 신간센(新幹線)이 효시다. 1964년 시속 210㎞급으로 도쿄올림픽에 맞춰 개통됐다. 이후 1981년 프랑스의 TGV가, 1988년에는 독일의 ICE가 차례로 개통됐다. 1992년 스페인이 TGV의 기술을 이전받아 AVE를 개통시켰다. 2004년 개통된 KTX는 세계 5번째의 고속철도인 셈이다. 음식점에서도 '빨리 빨리'를 연발하는 한국인의 정서에 꼭 맞는 교통체계다.
▶1990년대 초, 한국이 고속철도 건설계획을 내놓자 신간센과 TGV, ICE가 수주전에 뛰어 들었다. 당시 신간센은 속도나 기술이 최고 수준이고 우리와 같은 산악지형 철도라는 비교우위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초반부터 밀렸다. 반일 감정이 작용한 것이다. 일본이 고속철도 수출을 통해 다시금 대륙진출을 꾀한다는 얘기까지 돌았다.
▶당시 프랑스와 독일로 고속철도 시승 취재를 간 적이 있었다. ICE측은 취재진을 조종실에 태웠다. "잘 보라"더니 비가 오는 날씨에 순간시속 330㎞를 돌파해 보였다. 아찔한 속도 묘기였다. TGV측은 자신들의 기술로 그 얼마 전에 개통된 스페인의 AVE(마드리드∼세비야)에 태웠다. 한국이 TGV를 택하면 AVE와 같은 최신의 고속철도를 갖게 될 것이라는 무언의 자신감이었다.
▶그 고속철도가 인천시민들에게는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다. 서울역이든 광명역이든 2시간 전에 집을 나서야 고속철도 시간에 맞출 수가 있다. 실제 기차를 타는 시간보다 타러가는 시간이 더 많다. 설상가상으로 그나마 있던 KTX역마저 날아갈 참이다. 코레일은 지난 3월 평창동계올림픽이 끝나자마자 인천공항 KTX 운행을 중단시켰다.
▶처음에는 열차 정비를 거쳐 5월에 운행을 재개한다고 했다가 다시 8월로 미뤘다. 마침내 국토교통부에 운행폐지를 신청하면서 속셈을 드러냈다. 관련 댓글에는 '안드로메다로 날아간 인천공항 KTX'라는 한탄도 보인다. 만화 '은하철도 999'에 빗댄 것이다. 정치권과 인천 서구 등에서 반대여론이 일고 있지만 너무 미지근하다. 이게 어찌 서구만의 일이랴. 인천공항 KTX는 인천시민뿐 아니라 전국 지방민들의 발이다. 당장 재운행에 들어가야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