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경호 언론인
길가메시는 신화 속 첫 영웅으로 꼽힌다. 기원전 24세기 수메르 왕조 초기의 전설적 왕으로 여러 서사시의 주인공으로 종종 등장한다. 점토판에 새겨져 전해오는 무용담은 오늘날의 문학 자산으로 곧잘 쓰인다.
길가메시라는 이름도 흥미롭다. '길가'는 늙은이, '메시'는 젊은이를 뜻한다고 한다. 말 그대로라면 '늙은 젊은이'거나 반쯤 늙고 반쯤 젊은이일 터이다. 과연 신화 속 영웅답다. 관련 학자들은 이를 교훈으로 가공했는데, 늙은이가 젊어지진 못하지만 젊은이는 늙어간다는 게 사람 운명이라 푼다. 그게 그거 같은데, 영웅이 염원했던 불멸은 없다는 메시지라고 한다.

신화 속 길가메시도 불멸을 향한 욕망으로 '생명의 땅'을 찾아 나선다. 신화는 우여곡절 끝에 생명의 땅에서 영생을 보장하는 뭔가를 얻긴 하는데, 곧 잃는다는 등의 이야기로 펼쳐진다. 관련 서사는 여러 버전이지만 핵심은 결국 하나다. 부와 명예에 용맹 등 모든 걸 가진 영웅이지만 불멸에는 실패한다는 것이다. 하여, 좌절한 길가메시는 헛됨을 깨닫고 죽음을 당당히 받아들인다.

어디 태곳적 길가메시뿐일까. 중국의 시황제, 이슬람권의 술탄 등 숱한 이들이 영생을 꿈꿨다. 부(富)와 권력 등 모든 것을 얻은 이들의 궁극적 바람은 영생이거나 장수다. 부와 권력은 이를 이루기 위한 방편이다.
물론 이런 욕망은 오늘날이라고 다를 바 없다. 그 옛날 길가메시는 생명의 땅에, 시황제는 불로초에 기댔다. 오늘날은 자본과 과학의 연대와 결합으로 생명연장을 넘어 불멸을 쟁취하려는 양상이다.

당초 질병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생활의 지혜'는 의료산업으로 나아갔고, 몸집을 부풀린 생명공학과 사이보그공학 등과 뒤섞여 유기생명체로서의 호모사피엔스가 갖는 한계를 넘어서려 하고 있다.
구글은 이를 '길가매시 프로젝트'라 명했는데, 궁극적으로는 '더 나은 인간' 아닌 '다른 유형의 인간'으로의 업그레이드를 꾀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프로젝트 참여자들 관측대로라면 얼추 2050년 쯤 '사피엔스 베타버전' 정도 등장할 텐데, 업그레이드 안 된 사피엔스가 이런 상황을 어떻게 맞이할지 무척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