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국 논설위원
50대 들어 '내려가면서' 발견하곤 한다. 40대까지 '올라갈 땐 못 보았던, 그 꽃들'을 말이다. 어른들은 "까불고 있네"라고 하시겠지만, 나이를 먹는 것 같다.
40대까지만 해도 끼어들기를 하는 차량을 보면 "빠아앙~!" 클랙슨을 누르며 틈을 주지 않았다. 마치 엄청난 죄악을 심판이라도 할 것처럼. 지금은 '그래 들어와라, 나도 그럴 때가 있었지' 하며 속도를 늦춰준다. 디퍼플(Deep Purple)의 하이웨이 스타(Highway Star)와 같은 헤비메탈만이 진정한 음악이고 바흐와 쇼팽의 클래식음악은 자장가였으나 지금은 정 반대다.
대화를 할 때 낮고 느리게 말하는 것이 하이톤으로 얘기하는 것보다 편하다. 지인들로부터 밥을 얻어먹거나 선물을 받기보다는, 밥을 사거나 줄 때 마음이 더 편하고 기분이 좋다. 다만 자주 그러지 못해 늘 미안하지만 말이다.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면 세상의 종말을 맞기라도 한 것처럼 스트레스에 짓눌려 몇날며칠 밤잠을 설치곤 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어떤 일을 할 때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는 버릇이 생겼다. 좋으면 좋은대로 나쁘면 나쁜대로 받아들일 뿐, 과거에 비해 결과에 영향을 덜 받는다.

부정적으로 바라보던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때도 50대에 들어서면서부터다. 감정의 낭비로 건강을 해칠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서다. 운동하는 시간과 병원가는 시간이 중요하다는 신념을 갖게 된 것도 변화라면 변화이다. 가족을 이해하게 된 건 정말 큰 소득이다. 다른 어머니들은 안 그런데 우리 어머니는 왜 그렇게 고집이 세고 유별나실까, 다른 부부 사이는 안 그런 것 같은데 왜 우리 '마눌님'은 어째서 남편을 이해하지 않으려 하는 걸까 등등…. 당연한 것이었다. 기자가 불완전한 '인간'이듯이, 어머니도 아내도 인간이었던 것이다. 우린 모두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가족들을 더 깊은 사랑의 눈길로 바라볼 수 있게 됐다. 잘 살펴보니 그들은 단점보다는 장점을 더 많이 갖고 있었고, 주는 것만 생각했지 받은 것은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도 인식했다.

연초의 예상대로 한 해의 절반이 훅 지나갔다. 크리스마스를 즈음해 "그래도 올 한 해 잘 살았네"란 독백을 위해 남은 6개월, 삶의 새로운 꽃을 더 발견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