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 2018] 코카서스 3국-아제르바이잔 바쿠
[실크로드 2018] 코카서스 3국-아제르바이잔 바쿠
  • 남창섭
  • 승인 2018.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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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량한 모래바람 나라, 석유가 콸콸 터졌다
▲ 슬픈 전설이 깃든 메이든 탑
▲ 메이든 탑 주변의 실크로드 교역터
▲ 바쿠의 랜드마크인 프레임 타워,
▲ 카스피해를 둘러싸고 있는 바쿠만과 바쿠 시내
▲ 카스피해 연안의 바쿠유전.

6. 실크로드 요충지 불꽃으로 타오르고

 


19세기 초반 구소련 지배받다 분리


카스피해 원유 발견 '세계적 산유국'

오일머니 부 쌓아 … 통신·관광 투자

성곽방어 목적 메이든탑엔 전설이

불꽃 '프레임타워'서 바쿠 한 눈에


아제르바이잔의 수도는 바쿠다. 바쿠의 외곽에 접근하자 황량한 땅에 모래바람이 뿌옇다.

바람사이로 여기저기 낮은 집들이 빼곡하다. 바쿠가 '바람의 도시'라는 의미를 초입에서부터 실감한다.

하지만 모래바람과 뙤약볕보다 더 끔찍한 것은 도로와 마을, 골목 사이를 종횡으로 질주하는 고압선들이다.

아제르바이잔은 우리나라보다 약간 작은 나라다.

북으로는 코카서스 산맥이, 동쪽으로는 카스피해가, 남서부 지역은 초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드넓은 초원지역은 농업에 집중하고, 카스피해 지역은 원유와 가스가 무진하다. 오일머니로 부를 축적한 아제르바이잔은 정보통신과 관광산업에도 집중 투자하고 있다.

아제르바이잔도 고대부터 실크로드의 주요 요충지였다.

그런 이유로 기원전 8세기부터 메디아왕국의 일부로 역사에 등장한다.

아제르바이잔이 최초로 독립국가가 된 것은 페르시아 제국을 무찌르고 이 지역을 차지한 마케도니아 때이다. 알렉산더 대왕의 참모 중에 이곳 출신인 아트로파테스가 있었다. 그가 코카서스를 다스리는 총독이 되었는데, 그의 이름에서 아제르바이잔이라는 명칭의 독립국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이후, 부침을 거듭하던 아제르바이잔은 7세기부터 아랍의 지배를 받았고, 11세기에는 셀주크튀르크, 13세기에는 몽골의 지배를 받았다. 16세기부터 근 4세기 동안 페르시아와 오스만튀르크의 통치를 받았다. 아제르바이잔의 국교인 이슬람은 이때에 형성된 것이다.

19세기 초반 구소련의 지배를 받다가 중반에는 분리되어 구소련과 페르시아의 보호령이 되기도 했다. 후반에는 카스피해에서 원유가 발견되어 이때부터 세계적인 산유국이 되었다.

바쿠는 12세기 즈음에 실크로드 최고의 중계무역장소였다.

바쿠의 중심부에 위치한 구시가지에는 고대 실크로드의 유적들이 여럿 남아있다. 11세기 건립된 시그니갈라 미나레트(첨탑)와 성벽, 12세기에 지어진 메이든 탑과 목욕탕, 15세기의 쉬르반샤 궁전 등이 중세도시의 위용을 간직하고 있다.

원통형 모양의 독특한 탑인 메이든 탑은 성곽도시를 방어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이 탑은 다양한 민족들의 문화가 반영되어 있는데, 이를 통해서도 바쿠가 실크로드의 요충지였음을 알 수 있다. 모든 역사적인 유적에는 전설이 있다. 이곳 메이든 탑에도 여러 가지 전설이 있다. 가장 유력한 전설은 이곳을 다스리는 왕이 공주인 메이든을 너무 사랑했다고 한다. 이에 공주가 탑을 세워달라고 하고 탑이 완성되자 꼭대기에서 투신하였다고 한다. 아버지의 광적인 사랑이 딸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이다.

탑 주변부터 바쿠고성까지 이어진 길목에는 옛날 상인들이 물건을 거래하던 장소부터 그들이 숙소로 머물던 카라반 사라이까지 실크로드의 유적들이 남아있다. 특히, 카라반 사라이는 지금도 레스토랑으로 성업 중이다. 이곳에서 여유롭게 식사와 가무를 즐기며 당시 번화했던 거리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15세기에 지어진 쉬르반샤 궁전은 당시 수도였던 쉐마키에 지진이 나자 이곳 바쿠로 옮겨와서 다시 지은 것이다. 왕의 집무실과 접견실, 연회장과 거주공간, 사원과 첨탑 등이 조밀하게 들어서 있다. 궁전 건물 벽에는 총탄의 흔적이 선명하다. 18세기에 소련 해군의 공격에 성벽이 파괴되었는데 그때를 잊지 않기 위하여 일부러 남겨놓은 것이다.

구시가지를 벗어나면 현대 바쿠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프레임타워가 있다. 일명 불꽃타워로 알려진 이곳은 190m 높이의 불꽃형상으로 지은 건물이다. 이 건물은 6년의 공사기간을 거쳐 2013년에 완성되었는데, 외곽전체를 LED조명으로 만들어 밤마다 불꽃쇼를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건물모양과 조명이 한데 어울려 수도 바쿠의 랜드마크가 되었다. 이제 바쿠는 '바람의 도시'를 벗어나서 세계적인 산유국임을 자랑하는 '불의 도시'로 변모한 것이다.

프레임타워 옆, 바쿠만과 바다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는 순교자의 길이 있다. 이곳은 우리의 국립현충원과 같은 곳으로 국가를 위해 전사한 자들이 묻힌 곳이다. 이곳에서 서면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바쿠시내와 타워크레인이 즐비한 항구 그리고 카스피해를 오가는 선박들이 보인다. 깨끗하고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 것이 유럽의 한 중심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코카서스 3개국은 모두 구소련의 붕괴와 함께 독립했다. 오랫동안 소련의 영향을 받아왔던 까닭

 

에 아직도 그때의 흔적들이 남아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아제르바이잔의 바쿠는 다르다. 일찍부터 오일머니의 힘으로 소련의 흔적을 지워버린 지 오래다. 그리고 오늘도 서구 국가들과 함께 호흡하며 그들의 반열에 오르려고 애쓰고 있다.

인천일보 실크로드 탐사취재팀
/남창섭 기자 csnam@incheonilbo.com
/허우범 작가 appolo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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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3위 원유 매장량 축복

바쿠 1769㎞ 파이프라인 시작점

카스피해는 세계 3위의 원유매장량을 가지고 있는 보고이다.

카스피해 동쪽 카자흐스탄에서 채취된 원유는 악타우항에서 유조선에 실려 반대편의 아제르바이잔 바쿠항에 도착한다. 바쿠는 세계에서 가장 긴 1769㎞의 파이프라인이 시작되는 곳이다.

바쿠에서 출발하는 파이프라인은 조지아의 트빌리시를 거쳐 터키의 세이한 항구에 도착한다. 세 도시들의 약자를 따서 BTC 파이프라인이라고 부른다. 내해인 카스피해에서 생산된 원유가 BTC 파이프라인을 거쳐 지중해로 이동하고 이곳에서 다시 유럽으로 공급되는 것이다.

구소련시절에는 카스피해의 에너지를 소련과 이란과 양분하였다. 하지만 1991년 소련 붕괴 후 독립한 카자흐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아제르바이잔 등이 영유권을 주장하자 이들의 권한은 각 20%로 축소되었다. BTC 파이프라인은 막대한 경제적 이득과 정치적 영향력 등을 고려한 국가와 기업들이 11년간의 공사를 거쳐 2005년에 완성하였다.

카스피해를 둘러싼 유전쟁탈전은 카스피해를 바다로 볼 것이냐, 호수로 볼 것이냐에 따라 판이하게 다르다.

바다로 본다면 해양법에 따라 해안선이 긴 러시아와 카자흐스탄에게 유리하다. 호수로 본다면 5개의 나라가 각각 똑같이 20%의 지분을 갖게 되어 나머지 3개국에 유리하다. 해당 국가들은 여러 번에 걸쳐 영유권 문제를 협의하였지만 아직까지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카스피해의 막대한 원유 매장이 축복이 될지, 아니면 재앙의 화약고가 될지 아직은 미지수다. 하지만 러시아의 재확장과 중국의 영향력 확대 등 이 지역을 둘러싼 신 그레이트 게임은 이미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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