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체제를 표방하는 서구식 이념과 '아시아의 가치'가 충돌했던 싱가포르에서 지난 12일 북미정상회담이 개최됐다. 문화 상대주의를 내세우며 개인중심의 서구 문화와 차별성으로서 아시아의 가치를 주장했던 싱가포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펼친 세기의 담판으로 역사에 기록됐다.

싱가포르를 선진경제국 대열에 올려놓은 리콴유 전 싱가포르 수상은 아시아적 가치 담론을 촉발시킨 지도자로 기억된다. 그는 1994년 'Foreign Affairs'와의 인터뷰에서 '싱가포르의 경제적 발전은 아시아의 고유한 문화적 가치체제에서 발현된 것'이라며 문화 상대주의를 적극 옹호하는 입장이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주장한 '한국적 민주주의'를 비롯해 인도네시아 전 수상 수하르토, 말레이시아 전 총리 마히티르 역시 서구식 인권과 민주주의는 아시아의 독특한 문화적 요인과 결부해 적합하지 않다는 통치 이념을 고수한 대표적인 정치 지도자들이다. 동아시아 대부분의 국가가 일탈적 발전을 유지해온 이면에는 문화 상대주의가 집권의 수단으로서 십분 악용되어 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또한 아시아의 특수한 문화적 전통이라는 명분이 인권침해를 호도하기 위한 방편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끊임없이 제기됐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민주주의와 인권은 인간의 보편적 가치로서 아시아적 특수성을 이유로 거부될 수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사실 문화적 가치가 인권을 지배할 수는 없다. 사형이나 공개처형과 같이 사람을 죽이고 고문하는 인권유린을 허용하는 문화 상대주의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북한은 국제사회의 인권문제 제기에 대해 항상 예민하게 반응해 왔다. 북한은 '우리식 인권론'을 내세우고 주체사상과 결부한 특수한 관점에서 인권의 보편적 가치 인정을 유보했으며, 주권침해 또는 내정간섭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북미정상회담 테이블에는 북한의 비핵화와 종전선언, 그리고 체제보장 수순을 올려놓았다. 체제전복을 두려워 하는 북한은 무엇보다 '인권공세'를 경계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의 체제보장은 북한의 인권개선과 결부될 사안이다. 북한의 체제 유지에 동원된 인권의 실상은 공개처형, 살인과 같은 극악한 방법으로 북한 동포의 생명권을 위협하고 있다. 불법체포, 구금, 고문, 폭행 등 자유권 침해 사례도 증가하고 있다.

1990년대 대량 탈북 사태와 식량난이 심각해짐으로써 북한의 인권이 본격적으로 도마 위에 올랐다. 그럴수록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논의는 남남갈등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다. 북한정권의 교체를 통해 북한의 인권개선이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과 북한 체제가 유지되는 가운데 점진적 인권개선이 필요하다는 등 차이를 보여 왔다. 아직도 세계 도처에 불법 살해, 고문, 여성폭력, 인신매매, 아동 성착취, 언론 및 표현의 자유 침해 등 인권 사각지대는 남아 있다. 북한은 체제유지를 위해 정적은 물론 친족 목숨까지 제거하고 있다. 지난해 2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 제2청사에서 평양 출신 40대 후반의 한 남성이 사망한 사건에 대해 미국의 소리(VOA) 방송은 1년이 지난 올해 "이 남성이 치명적 맹독성 신경안정제 'VX'로 암살됐다"고 밝혔다. 2013년 12월 13일 로동신문은 장성택을 처형했다고 보도했다. 장성택 처형 사건은 2016년 여·야로 하여금 북한인권법 제정에 나서게 한 강력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2003년부터 현재까지 UN은 북한인권결의를 채택해 왔고, 미국과 일본은 북한인권법을 제정했다.

김정은 체제가 정상국가 여건을 갖추기 위해선 무엇보다 먼저 북한 주민의 기본적 인권보장이 인류 보편의 문제로 거론돼야 한다. 또 북한 주민의 인권개선은 미래 평화통일의 전제 조건으로 반드시 필요하다. 1948년 유엔총회에서 세계인권선언이 채택된 지 70주년을 맞았지만, 세계 곳곳에서 고통을 받는 삶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최소한 인간이 지녀야 할 존엄의 가치마저 상실하고 있는 인류 역사 이면에 인류의 위기가 증폭되고 있는 현실이다.
인권이란 무엇인가. 인간이라면 누구나 공평하게 누려야 할 천부적이고 절대적인 권리이고, 보호되어야 할 보편적 가치다. 그럼에도 인권침해는 국가 안보 이데올로기를 내세운 국가주권의 하위개념으로 자행되어 왔다. 북한 인권에 대한 문제제기에 북한은 아쉽게도 체제보장을 이유로 주권침해, 내정간섭, 선군정치 등을 내세워 여전히 강변할 것이다. 국제무대에 선 정상국가라면 인권 규범에 동의해야 한다. 또 억압을 받는 북한 동포의 구원 표상은 인권으로 집약된다. 과연 김정은 체제도 그러할까. 북한 체제를 유지하며 인권을 개선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일단 싱가포르 북미 정상은 한반도, 그리고 세계 평화를 향한 거보를 내디뎠다. '완전한 비핵화와 체제안전보장'의 순항을 기대한다. 세습권력의 김정은이 어떻게 인권문제를 해결할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