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일의 마음산책] 봄날은 간다
[이문일의 마음산책] 봄날은 간다
  • 이문일
  • 승인 2018.05.22 00:05
  • 수정 2018.05.24 13: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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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주간
싱그럽다. 날로 푸르러 가며 마냥 풍성함을 자랑한다. 우리네 삶을 넉넉하게 누리도록 하는 이 풍요는 하늘이 주는 선물과도 같다. 신록(新綠)의 상징인 5월은 이제 상큼함을 넘어 녹음(綠陰) 짙은 여름철로 가는 채비를 서두른다. 또 속절없이 봄날은 간다는 말이다. 이 강산은 곧 여름을 맞아 더욱 푸른 옷으로 갈아입고 '녹색'을 찬미해마지 않을 터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두루 사시(四時)를 두고 자연이 우리에게 내리는 혜택에는 제한이 없다. 그러나 그 중에도 그 혜택을 풍성히 아낌없이 내리는 시절은 봄과 여름이요, 그 중에도 그 혜택을 가장 아름답게 나타내는 것은 봄, 봄 가운데도 만산(萬山)에 녹엽(綠葉)이 싹트는 이 때일 것이다.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고 먼 산을 바라보라. 어린애의 웃음같이 깨끗하고 명랑한 5월의 하늘, 나날이 푸르러 가는 이 산 저 산, 나날이 새로운 경이를 가져오는 이 언덕 저 언덕, 그리고 하늘을 달리고 녹음을 스쳐 오는 맑고 향기로운 바람. 우리가 비록 빈한하여 가진 것이 없다 할지라도, 우리는 이러한 때 모든 것을 가진 듯하고, 우리의 마음이 비록 가난하여 바라는 바, 기대하는 바가 없다 할지라도, 하늘을 달리어 녹음을 스쳐 오는 바람은 다음 순간에라도 곧 모든 것을 가져올 듯하지 아니한가?…"

고등학교 때 국어 교과서에 나왔던 이양하(李敭河)의 신록예찬(新綠禮讚) 구절이다. 수필 중 백미(白眉)로 꼽히는 이 글은 여러가지 마음의 상극(相剋)과 갈등을 극복해 조화로운 세계로 이끌어가는 매력을 지녔다. 신록에 깃든 힘이 인간에게 위안과 기쁨을 주며, 세속적인 일상에서 벗어나 자연과 하나됨을 일깨운다. 온갖 탐욕과 싸움에 길들여진 우리에게 저만치 물러서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삶을 살아보라는 메시지다. 자기 분수(分數)를 알고 지내면 마음이 편안하다는 얘기다. 모든 일에는 일장일단(一長一短)이 있으니,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말라는 가르침을 주는 듯하다.

이 계절은 뭇 사람을 설레게 하고도 남는다. 저마다 도시락을 옆에 끼고 즐거운 소풍길에 나서기도 한다. 지금 가면 언제 다시 올줄 모르는 것처럼 '이 산 저 산'을 찾아간다. 짧은 인생길에서 푸르고 싱그러운 5월을 기리겠다는 마음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너도 나도 짙어가는 녹음과 함께 저무는 봄을 아쉬워하며 길을 떠나려고 한다.
이런 호시절(好時節)을 그냥 지나쳐서야 쓰겠는가. 하루라도 짬을 내 신록 속에 파묻혀 볼 일이다. 그런데 곱디고운 이 계절을 마다하는 이들이 있다. 바로 '6·13지방선거'에 나서는 후보들이다. 불과 20여 일 앞으로 다가온 선거를 준비하느라 정신줄을 놓고 산다. 이들에게 상큼한 봄의 기운을 느껴보라는 일은 언감생심(焉敢生心)이다. 사치일 뿐이다. 지금이 어느 때인데, 푸름을 더해가는 산천초목이 대수인가. 살가운 여유를 용납할 수 없다는 눈치다. 이들에겐 누가 뭐라고 하든, 선거를 치러 일단 당선되고 보자는 식이다. 자존심도 없고 체면도 없다. 오로지 당선 이외에는 가정(假定)할 겨를이 없다고 생각한다. 상대방을 비방하고 내려깎는 데 '선수'인 후보도 많다. 당리당략에 빠져 지방선거의 참뜻을 저버리는 이들도 있다.

유권자들은 그런 후보를 어떻게 여길까. 단언컨대 아주 싫어한다. 상대는 그르고 자기만 옳다는 후보에게 표심은 멀리 달아난다. 유권자들은 상대방이 잘하는 일에는 추켜세우기도 하고 칭찬을 할줄 아는 이들에게 발길을 옮긴다. 그렇게 했는데 떨어졌어도, 다음을 기약하는 이들을 꼭 기억한다. 남을 헐뜯고 몰아세워 뽑힌 후보를 유권자들은 께름칙하게 바라본다. 이들은 선거 후유증도 남기기 십상이어서 절레절레 손사래를 치기도 한다. 한 유권자가 "당신은 뽑히고 나면 어떻게 할 거요?"라고 묻자, 후보는 대뜸 "주민을 모시고 섬기며 지역발전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라고 말한다. 대답은 걸작이다. 그러자 그 유권자는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그럴 사람이 아닌데'라면서 말이다. 상당수 유권자는 이런 의심을 품으면서 아직도 누구를 선택할지 망설인다. 혼란스럽기조차 하다. 만날 '도긴 개긴, 그 나물에 그 밥' 탓인가.

지방선거에선 '지방살림'을 잘 챙겨 내가 사는 곳을 좀더 살기 좋게 만드는 이를 선출해야 한다. 후보마다 지역 주민들에게 '눈 높이'를 맞춰 공약을 하며 선거운동을 해야 옳다. 다른 선거보다 더 주민 피부에 와닿을 수 있게끔 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울러 지역 사회 갈등을 봉합하고 치유할 수 있는 후보를 유권자들은 보고 싶어 한다. 물론 이번 '선거바람'이 어디로 불지는 미지수다. 그래도 제발 살림을 잘 꾸려 지역에 사는 우리를 행복하게 할 수 있는 후보들이 선택되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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