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론인

파리 시내에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에 의해서 희생된 사람들의 이름을 딴 거리들이 많다. 파리 20구(區)에 있는 엘렌·자쿠보비츠(Helen Jakubowicz, 1925~1942) 거리에는 다음과 같은 기념비가 길 이름 주인공의 행적을 기록해 놓고 있다. 『17세의 젊은 여성으로 레지스탕스운동에 적극 가담하다가 1942년 독일군에 체포되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짧은 생을 마감했다』▶거리 이름뿐만이 아니라 파리의 지하철역 중에 '샤르르 미셸'이라는 역도 나치점령 때 레지스탕스운동을 하다가 처형당한 파리 15구 출신 국회의원을 추모하기 위한 역 이름이다. 38세의 나이에 조국 프랑스의 해방을 위해 레지스탕스 운동을 하던 젊은 정치인을 파리 시민들은 추모하고 기억한다. ▶파리 시내에 있는 유치원과 초등학교는 물론 중·고등학교의 교문에는 검정색 대리석 기념패들이 붙어있다. 『파리가 나치 독일의 점령 하에 있을 때 이 학교에 다니던 학생 xx명이 유태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체포되어 독일 각지에 있는 집단 수용소로 끌려가서 생을 마감했다. 유태인 학생들이 강제 수용소로 끌려간 과거를 잊지 않을 것이다』▶파리 시내를 뒤덮고 있는 나치독일의 만행을 회상할 수 있는 거리이름이나 지하철역의 이름들 그리고 각 급 학교의 추념패를 보면 오늘날 독일과 프랑스와의 돈독한 관계를 이해하기 힘들다. 1963년에 체결된 독일과 프랑스간의 우호조약을 계기로 두 나라는 통합 유럽을 함께 만들고 견인하면서 신뢰하고 존중하는 관계로 발전했다. 두 나라에서는 서로의 언어를 제1외국어로 채택했고 여론조사결과를 보아도 독일인들은 프랑스를 프랑스인들은 독일인들을 가장 좋아하고 신뢰한다고 답하고 있다. ▶이 같은 독불우호조약은 2차 대전이 끝난 지 14년 만에 독일의 아데나워 수상이 프랑스의 드골 대통령을 엘리제궁이 아닌 사저(私邸)로 찾아오면서부터 싹트기 시작했다. 드골의 회고록 <희망의 기억>에 따르면 단독회담이 15회(총 100여 시간) 서신 교환이 40여 차례였지만 양국의 수도에서 의장대를 사열하거나 공식만찬행사 같은 것은 처음부터 피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의전절차에 얽매이고 만남의 장소가 공개되면 허심탄회한 대화가 어렵기 때문이라는 공감대가 있었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과의 만남은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킬 세기적 회담이다. 보다 차분하고 진솔한 분위기가 조성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