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오마이 보러 가야 한다우"
"우리 오마이 보러 가야 한다우"
  • 김진국
  • 승인 2018.05.01 00:00
  • 수정 2018.07.05 15: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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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 논설위원

선친의 고향은 함경남도 신포였다. 한국전쟁 당시 잠깐 피란을 갔다 오겠다며 남으로 내려왔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북에 두고 온 어머니를 간절히 그리며 아버지는 눈을 감았다. 아무런 경제적 능력이 없는 젊은 아내와 어린 자식들을 남겨 둔 채. 

'통일'이란 단어를 접할 때마다 눈시울이 뜨거워진 건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는 숭고한 뜻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선친을 향한 얼마간의 원망이 가슴을 짓눌렀기 때문이다. 노래방에서 강산에의 '라구요'를 부를 때 이따금 목이 메고 눈물을 찔끔거리는 이유를 사람들은 잘 몰랐을 것이다. 

빛 바랜 흑백사진만으로 만날 수 있었던 아버지를 이해하기 시작한 때는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뒤부터이다. 북쪽엔 어머니, 남쪽엔 처자식을 남겨두고 세상을 떠나는 심정이 어땠을까. 아버지가 돼 보니 아버지가 불쌍했다. 공교롭게도 장인어른의 고향은 평안남도 양덕이었다. 장인어른 역시 고향의 부모형제들과 생이별을 하고 남으로 내려왔다. 형제 가운데 유일한 아들이었던 장인어른은 생전, 소주가 몇 잔 들어가면 고향 얘기를 하시곤 했다. 

이산가족의 문제가 온 겨레의 아픔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때는 1983년이다. 

"어머니 어데 갔다가 이제 오셨어요!" 
"아버지 절 받으세요!" 
"그래 맞아! 내가 니 오빠야 니 오빠 000."

주름이 잡힌 얼굴과 얼굴 사이로 뜨거운 눈물이 흐르고, 마디가 두꺼워진 손들은 깍지를 끼운 채 놓을 줄을 몰랐다. 수십년 만에 만난 혈육을 어루만지며 오열하는 이산가족의 모습은 기쁨이고 비극이었다. 당시 공중파방송에서 생중계한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를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드라마도 그런 드라마가 없다는 것을. 64%의 시청률은 생방송 역사상 존재하지도, 앞으로도 깨기 어려운 기록일 것이다. 

남북 접경지역엔 같은 사연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인천만 해도 서해5도인 백령도나 교동도에도 고향을 떠나온 실향민들의 사연이 넘쳐난다. 서해 최북단 백령섬의 명물 '사곶냉면'은 실향민들이 수구초심으로 빚어낸 음식이다. 고향을 눈 앞에 두고도 가지 못 하는 사람들의 유일한 위안은 '고향의 음식'을 만들어 먹는 일이었다. 한국전쟁 당시 백령도로 건너온 2만여 명의 사람들은 고향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슬픔을 꾹꾹 밀어 넣었다. 고향에서 즐겨먹던 평양·함흥 냉면은 '백령냉면'으로 바뀌어 실향민들의 식탁에 올랐고, 지금은 백령도에 오는 관광객들이 반드시 먹고 가는 대표음식이 됐다. 선친과 함께 월남한 친척들의 식탁에서 가자미식해를 발견하는 일이 예사였던 것을 보면 음식과 고향은 같은 말이었던 셈이다. 꾸덕꾸덕 말린 가자미에 좁쌀밥과 무채 등을 넣어 삭힌 가자미식해가 어려선 입에 맞지 않았다. 이런 걸 무슨 맛으로 먹나 싶었다. 그런데 지금은 가끔 그 새콤한 맛이 생각날 때가 있다. 한반도의 한 가운데 선이 그어지기 전까지, 교동도 사람들은 강화도보다 황해도 연백을 더 자주 오갔다. 장이 열릴 때도 중매를 설 때도 교동도와 황해도는 가장 가까운 이웃이었다. 황해도와 교동도를 잇는 소통의 뱃길이 서로 헐뜯는 비난방송의 통로로 이용돼 왔다는 사실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개성 설치, 경의선·동해선 철도와 도로연결, 서해북방한계선 일대 평화수역 설정과 함께  '8.15 이산가족방문'이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된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이산가족 상봉 같은 경우 준비에 시간이 필요한 것들이어서 다른 것보다 우선적으로 해야 한다"고 밝혔다. 맞는 말이다. 이산가족은 연로한 어르신들이 대부분이라 미래를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 2월 말 현재 통일부 이산가족통합시스템에 등록된 이산가족은 모두 13만1000여명이며, 이 가운데 생존자는 5만8261명으로 알려졌다. 그렇지만 잘 몰라서 등록하지 않은 이산가족도 많을 것이다. 

죽음이 슬픈 것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영원한 이별이기 때문이다. 살아 있는데, 내 가족이 저 쪽에 살아 있는데 못 만난다는 것은 죽음보다 더한 형벌일 수 있다. 

남북정상이 두 손을 맞잡고 같은 곳을 바라보는 지금, 어디선가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우리 오마이 보러 가야 한다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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