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수 칼럼] 하와이 사탕수수밭 후예, '별'이 되다
[김형수 칼럼] 하와이 사탕수수밭 후예, '별'이 되다
  • 김형수
  • 승인 2018.04.20 00:05
  • 수정 2018.07.09 20: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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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가 내려 꽃비가 흩날렸다. 강과 기슭을 스쳐 지나던 바람처럼 봄은 어느새 벌판 끝에 섰다. 연분홍 꽃잎들이 물받이를 가득 채웠다. 삭풍을 여미며 일본 우편기선 켄카이마루에 몸을 실은 하와이 이민 선조들의 옷깃이 봄 바다에 펄럭인다. 사계절 피는 상하의 플루메리아를 보고 고향의 봄을 그리워 한 디아스포라 1세대의 삶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정부에서 추진한 첫 해외 이민의 출발지는 인천이다. 이민 모집과 송출, 하와이 정착에 이르기까지 인천은 대한민국 이민사의 중심에 있다. 115년 전, 하와이 오아후 섬 북단의 와이알루아 사탕수수농장에 도착한 이민 선조들은 '사진신부'를 만나 가정을 일구고 성공적인 한인사회를 구축했다. 그 이민 역사를 간직한 인천에 인천내리감리교회, 인하대학교, 한국이민사박물관이 있다.

1902년 12월22일 121명이 일본 나가사키로 출항했다. 나가사키항에서 갤릭호에 몸을 실은 102명의 이민 선조들은 다음해 1월13일 낯선 하와이 호놀룰루항에 도착했다. 존스 목사 권유 등으로 이민의 과반수는 인천내리교회 교인들이었다. 인천 출신이 전체 이민자의 86명으로 84%를 차지했다. 인하대학은 하와이 이민 50주년을 기념해 우남 이승만 박사가 설립했다. 설립 당시 인하공과대학 교명도 인천과 하와이의 첫 음을 따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직접 지었다. 우남은 1913년부터 하와이에서 동지회를 결성하고 조국 독립운동과 민족 교육운동에 헌신했다. 인하대 설립에 불을 지핀 것은 우남이 하와이에서 운영한 한인기독학원을 매각한 15만달러를 기증하면서부터다. 사실 이 종잣돈은 1962년에야 학교에 전달돼 1973년 인하대 실내체육관(하와이교포기념관) 건립기금 일부로 사용됐다.

월미도의 한국이민사박물관은 장대한 이민 역사를 품고 있다. 2008년 박물관 개관을 앞두고 하와이 교포들의 자료 기증 등 물심양면의 후원을 받았다. 대한민국 이민사를 간직한 인천과 하와이, 인하대와 인천내리감리교회, 한국이민사박물관 등의 역사적 가치와 기능은 인천의 소중한 자산으로 이어져야 한다.

이제 사탕수수밭 노동이민 1세대 뒤를 이어 그 후손들도 하나 둘 세상을 떠나고 있다. 하와이 이민으로 정착해 성공한 기업인으로서 하와이 교포사회를 이끌어 온 김창원(미국명 도널드 김) ㈜앰코(AMKORE A&E) 회장이 지난달 28일 호놀룰루에서 9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김 회장과 함께 하와이 한인사회 발전에 기여한 민주평통 하와이협의회장 등을 역임한 여창동 USA투어 사장도 지난해 8월11일 81세로 작고했다. 여 회장은 우남이 하와이섬(빅 아일랜드)에 조성한 '동지촌 숯가마터'를 교포 수중으로 안기게 했다. 고 김창원 회장은 1952년 하와이로 이주해 자수성가하고, 기부문화를 실천한 삶을 살았다. 그의 부친은 인천출신으로 하와이 이민 1세대 사탕수수밭 노동자였으며, 모친은 사진신부였다. 김 회장은 서울대 화공과를 다니다 한국전쟁 중 하와이 이민을 결심했다. 구둣방 점원으로 일하며 하와이주립대 토목공학과를 졸업한 그는 하와이 유수의 건축회사 RM토윌에 평사원으로 입사해 회장직에 오르는 입지전적 인물이었다. 기회가 닿을 때마다 기부의 삶을 실천한 그의 일생이 더욱 빛나는 이유다.

2003년 미주한인이민100주년기념사업회 총회장을 맡아 60만달러 상당의 사재를 기부하고, 카이스트(KAIST) 해외이사로서 100만달러를 희사했다. 하와이주립대학교(UH) 한국학연구소에도 발전기금 150만달러 상당을 기부하고 기금모금에도 앞장섰다. 하와이 지역사회와 교육기관에 내놓은 기부금도 수백만 달러에 이른다. 김 회장은 UH 이사장과 동창회장에 추대되기도 했다. 그는 1967부터 3년간 하와이 동포들의 성원으로 창학한 인하공대의 기금관리위원이었다. 하와이 우남이승만박사숭모회장으로서 노년을 보낸 독실한 크리스천이기도 하다. 특히 인하대에도 20만달러의 장학금을 기탁했다. 인천의 한국이민사박물관을 설립할 때도 중추적인 역할에 동참했다. 전주비빔밥을 좋아하고, 하와이 골프하우스에서도 김치를 주문하는 그의 핏속에는 한국인으로서, 인천인으로서의 회한이 담겨 있을 것이다.

지난해 10월 김 회장은 인천을 방문하고 한국이민사박물관 등을 둘러봤다. 인생의 마지막 인천행이었던 셈이다. 인하대총동창회가 하와이 역사탐방에 나섰을 때, 와이알레아 골프하우스에서 멋진 만찬을 베풀어 준 그도 사탕수수밭 이민 1세의 뒤를 따랐다. 우남의 교육의지를 꽃 피우려 인하대에 쾌척한 장학기금은 그가 설립한 오하나 퍼시픽은행에 맡겨져 있다. 이제 고인의 유지가 된 후학양성 장학기금을 들여와 의미 있게 사용했으면 한다. 호놀룰루 '인하공원'에는 2008년 인천시가 기증한 '별이 되다(Become a Star)' 조형물이 있다. 사탕수수밭 노동자 후예로 별이 되어 누아누메모리얼홀에 잠든 그의 일생이 길이 빛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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