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일 칼럼] 풍진(風塵) 세상을 만났으니…
[이문일 칼럼] 풍진(風塵) 세상을 만났으니…
  • 이문일
  • 승인 2018.04.10 00:05
  • 수정 2018.04.11 15:5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논설주간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전직 대통령이 구속됐다. 이들의 비리가 나오는 과정을 보면, '결국 인간은 권력 앞에서 부패할 수밖에 없는 존재인가'라는 생각이 든다. 과연 권력을 잡은 뒤 썩지 않고 넘어지지 않는 인간으론 누가 있을까. 재차 되묻지 않을 수 없다. 권력만큼 인간의 본디 모습을 드러내는 일은 없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정말 올바르게 행동했던 사람도 일단 권력을 쥐고나면 부패의 나락으로 빠지기 쉽다. 달콤한 권력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나 홀로' 즐기기에 바쁘다. 그런 행태는 비단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우리는 역사에서 숱하게 보아 왔다. 주변 회사나 공동체에서도 수장(首長) 자리에 앉게 되면, 소통의 문을 좀처럼 열지 않고 독단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을 흔히 볼 수 있다. 저 아래 있었을 때의 참신함과 결단력은 온데 간데 없어지고, 상황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고 그저 현실에만 안주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하물며 이런 '작은 권력'도 그럴진대 엄청난 권력을 쥔 왕이나 지도자들은 어떠했을까? 권력의 속성은 위 아래를 따지지 않고 늘 붙어 따라다니는 충견(忠犬)을 닮았다.

정치인이나 지도자들은 지나간 역사를 톺아봐야 할 터이다. 그래야 좀 더 지혜롭게 권력을 사용하고 이용할 수 있다. 아울러 '절대권력(絶對權力)'을 허용하지 않는 사회체제도 필요하다. 지금이야 국민들이 절대권력을 쥐고 흔드는 지도자들을 그냥 두지 않지만, 민주주의가 무르익지 않은 얼마 전만 해도 이들은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을 휘둘렀다. 사회시스템은 바로 그런 구조를 용인하지 않는 체제를 말한다. 권력을 늘 견제하면서 균형을 맞추려는 노력은 민주사회의 기본이자 책임이다. 여기에는 올바른 언론이 한 몫 차지하고 있음은 두 말할 나위 없다.
'권좌에 높이 올라갈수록 감옥 문이 가까워진다.' 우리나라 정치사를 두고 하는 말 같아 씁쓰레 하다. 만일 우리 정치사에서 그런 불행한 일이 생기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우리는 좀 더 살기 좋은 사회를 이룩했을까. 더 알찬 민주주의를 앞당겨 행복할 수 있었을까. 물론 역사에 가정(假定)은 없다. 실제와는 관계없이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설정할 필요가 있을까. 그래도 가설(假設)로라도 정한다면, 분명 우리 사회는 전보다 좋아지지 않았겠는가 하는 '희망'을 품어 본다. 그 희망은 개인적이지 않고 순수하게 우리 사회가 간절히 바라는 원(願)이다.

개인의 영달(榮達)을 위한 권력에는 반드시 탈이 나기 마련이다. 권력에 취해 어지럽게 춤을 추고, 마침내 만인(萬人)에게 지탄의 대상으로 낙인 찍히고 만다. 그러기를 소망하고 희망하는가. 부귀와 영화를 꿈꾸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마는, 권력을 손에 넣고 난 뒤에는 그것을 만인과 나누려는 슬기가 필요하다. 시늉만 해서는 만인은 금방 알아차린다. 민주(民主)란 말 그대로 백성이 주인인, 백성에게 권한을 준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백성들은 권력을 쥐고 안하무인(眼下無人)격인 지도자를 끔찍이 싫어한다. 어디 그뿐이랴. 강물에 '배'를 띄웠다가도 하는 일이 영 못 마땅하면 물보라를 일으키며 '배'를 뒤집어 엎는다.
일제 강점기인 1920년대에 유행해 한국 대중가요사 첫 장에 등장하는 구전(口傳) '희망가'를 들으면, '헛된 희망'이란 무엇인지가 그대로 읽혀진다.

이 풍진(風塵) 세상을 만났으니 나의 희망이 무엇인가 /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 희망이 족할까 / 푸른 하늘 밝은 달 아래서 곰곰이 생각하면 / 세상만사가 춘몽 중에 다시 꿈 같구나
한켠으로는 희망을 노래하는 듯하지만, 그 속에는 시비(是非)로 얼룩진 사회의 모순을 드러낸다. 바람 불고 먼지 날리는 세상에서 부귀와 영화를 꿈꾸며 아등바등 살아도, 결국에는 일장춘몽(一場春夢)이라는 내용이다. 헛된 희망·욕심을 품지 말라는 일종의 계몽적 노래다.
하나, 우리 주변을 한 번 살펴 보자. 오늘도 '한 건'을 올려 희망가를 부르려는 이들로 북적거린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일고 있는 움직임이다. '내 차림'이 어떠한지도 모르고 훌훌 털어버린 채 그저 나오면 당선되는양 거들먹거린다. 헛헛한 웃음이 절로 난다.
이제 우리는 희망의 의미를 다시 묻는다. '풍진 세상'에 '부귀와 영화'를 좇은들 무얼 하냐고. 후보 예정자는 물론 유권자들이 정신줄을 놓는 순간, 그 희망은 한낱 물거품으로 사라지리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