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실장
새봄의 꽃보다 빨리 피었다. '대놓고 돈 걷기'식 출판기념회 파도가 지나가자 이번엔 현수막 꽃밭이다. '말 잔치'들이 먼저 6.13 지방선거를 향한 질주를 시작했다. 대충 뭉뚱그려 보면 이렇다. '일자리 특별도시는 나의 것' '아이 낳기 좋은 고장도 나의 것' '시민의 눈과 귀, 손과 발도 나의 것' 등등.

 그간의 선거에 단련된 베테랑 주민들은 그저 그러려니 한다. 4년마다 죽지도 않고 돌아오는 '각설이 타령'쯤으로 친다. 당선만 되면 온갖 이권·비리에는 도무지 빠질 줄을 모를 것이다. '후안무치, 추태도 나의 것'이 될 것이다. 문제는 대(代)를 거듭할 수록 그 정도가 심해 가는 것이다. 나쁜 노하우는 잘도 물려받아 업그레이드 시킨다. 기초의원은 광역의원들로부터, 광역의원들은 국회의원들로부터 못된 본을 딴다. 기초·광역 단체장들도 거기서 거기다. 물론 다 그런건 아니지만.

 시간이 지났어도 잊히지 않는 추태의 압권들이 있다. 지난해 말 어느 기초의회에서 흥미진진한 폭로전이 펼쳐졌다. 이런 스토리다. 지난해 봄 한 의원이 13일짜리 해외연수를 간다며 출장비 250만원을 타내 출국했다. 그러나 연수 대신 미국의 한 명문대학에 유학 중인 딸의 졸업식에 갔다. 그의 해명은 이렇다. 딸의 졸업식은 이미 정해져 있었고, 자신의 연수 일정과 겹쳐 동료 의원의 아이디어로 졸업식과 연수를 접목시킨 것이라고. 졸업식 참석 후에는 그 도시의 공원 운영상태 등을 돌아봤다고. 차라리 술집이나 식당 운영 상태를 돌아 보지 않고.

 폭로는 또 있었다. 다른 의원 4명도 지난해 봄 9일간의 미국 테마공원 견학을 다녀왔다. 문제는 관광코스 위주의 여행사 패키지 상품을 이용한 점이다. 1인당 출장비는 250만원이었는데 패키지 상품은 1인당 199만원이었다. 한 푼이라도 시민 세금을 아끼려는 자세가 돋보인다. 그런데 그 차액을 반납하지는 않았다든가. 어차피 따로 공무국외여행으로 가나, 여행사 단체상품에 끼어 가나 외유성이긴 마찬가지라고 생각한 때문이었을까.

 이 곳만 탓할 일도 아니다. 여의도 국회에도 비일비재했으니. 그래도 너무 했다. 편의점 알바 청년들도 수시로 해외여행을 가는 시대다. 꼭 세금을 써서 나가야 맛인가. 신기하게도 그 많은 우리 의원님들이 스웨덴 의회 등의 견학은 피하는 것 같다. 특권도 없이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시민을 위한 일만 죽도록 한다는 게 무섭기도 하겠지.

 어느 광역의회에서는 동료들간 취중 폭행사건으로 임기 내내 시끄러웠다. 지방으로 워크숍을 가던 도중 길가 휴게소에서 벌어진 일이다. 오던 길도 아니고 가는 길이었으니 처음부터 '숙취 워크숍'이었는지도 모른다. 필름이 끊어질 정도로 취하게 한 값도 필시 세금일 터이다. 빙산의 일각일 뿐 전국 곳곳이 대동소이할 것이다.

 늘어놓다 보니 왕년의 코미디언 이주일씨기 생각난다. 국회의원직을 마감하며 "코미디 잘 배우고 갑니다"라고 했다든가. 예전에 유행했던 '술 취한 예비군'이라는 말도 떠오른다. 과거엔 해질 무렵 동네 선술집은 훈련을 마친 예비군들 차지였다. 막걸리에 취해 복장은 흐트러지고 고성방가에 노상방뇨, 부녀자 희롱까지. 멀쩡한 회사원도 예비군복에 술마시면 딴 사람이 된다고 했다. 왜 그럴까. 군중심리에다 책임이 1/n로 흩어져 부끄러운 줄을 모르게 되기 때문이다. 기껏 뽑은 선량들이 벼슬에 취해 후안무치한 '술 취한 예비군' 수준이라면 우선 뽑은 이들 잘못이다.

 지난해 국회의원들이 자기네 8급 보좌관 1명을 늘리는 셀프 입법을 감행했다. 그 때 나온 명언이 있다. "여론이란 건 며칠 지나면 없어지니 국민 눈치 볼 필요 없어." 이 추세대로 가면 지방의원들도 세금으로 보좌관, 비서, 기사까지 만들려 할 것이다. 상전인 국회의원을 본떠 연금까지도. 그러면 우리 국민들은 그들을 부양하느라 그야말로 털 빠진 노새 꼴이 될 것이다.

 '국민은 그들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알렉시스 토크빌)'고 했다. 훗날 털 빠진 노새 꼴이 되지 않으려면, '술 취한 예비군' 후보들은 동네 주막에 그냥 두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