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진국 논설위원
'그것은 안개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오면, 밤사이에 진주해 온 적군들처럼 안개가 무진을 삥 둘러싸고 있는 것이었다. 무진을 둘러싸고 있던 산들도 안개에 의하여 보이지 않는 먼 곳으로 유배당해 버리고 없었다. 안개는 마치 이승에 한(恨)이 있어서 매일 밤 찾아오는 여귀(女鬼)가 뿜어 내놓은 입김과 같았다….'
김승옥의 단편소설 '무진기행'에 나오는 무진이란 도시의 안개는 '불확실한 미래'를 상징한다. 눈을 떠 보면 바로 앞산조차 볼 수 없을 정도로 자욱한 안개. 김승옥은 이를 '여귀의 입김'으로 묘사하며 사람의 미래를 더 무시무시하게 써내려간다.

이 작품이 <사상계>에 발표된 때는 1964년. 군사정권이 산업화를 추진하던 시기였다. 개인은 없고 국가와 사회만 있는 그런 시대. 김승옥은 거대담론이 주류이던 당시의 소설 경향을 개인내면에 맞춘 미시담론으로 전환하며 문단의 주목을 받는다. 무엇보다 이 작품을 읽고 난 사람들의 뇌리에 오래도록 남는 것은 안개이다. 단 한발짝 앞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시야를 완벽하게 가로막고 있는 그런 안개 말이다.
김승옥의 안개가 등장한 이래 반세기를 넘긴 2018년. 대한민국은 안개처럼 보이는 미세먼지에 뒤덮여 있다. 물이 주성분인 안개는 건강에 그다지 나쁘지 않고, 오히려 낭만적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미세먼지는 전혀 다르다. 아황산가스·질소산화물·납·오존·일산화탄소 등이 주성분으로 천식과 같은 호흡기질환은 물론, 암까지 발병시킬 수 있는 최악의 유해물질로 구성돼 있다.

1960년대 안개가 개인의 영혼을 매몰시킨 국가였다면, 2018년 미세먼지는 지금 우리가 호흡하는 사회일지도 모른다. 한반도를 둘러싼 예측 불가능의 국제정세, 포항지진과 같이 언제 불쑥 찾아들지 알 수 없는 자연재앙, 청년실업과 낮은 출산율, 천문학적 가계부채 등등 우울을 넘어, 우리를 암울하게 만드는 현실 말이다.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해 중국 발 스모그에 대한 대책, 자동차와 공장이 뿜어내는 매연의 규제 등이 필요한 것처럼 고달픈 인생의 문제 역시 하나하나 해결의 방법을 찾아가야겠다. 그럼 바람과 햇살이 미세먼지를 걷어내며 우리의 앞길을 환히 비춰주리라. 호흡기가 약한 터라, 오늘은 두 장의 마스크를 쓰고 집을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