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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수 칼럼] '상징적 폭력'에 물든 위험사회 
[김형수 칼럼] '상징적 폭력'에 물든 위험사회 
  • 김형수
  • 승인 2018.03.16 00:05
  • 수정 2018.03.28 18: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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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에 오른 '#문단 내 성폭력' 해시태그가 문화예술계 전반으로 번졌다. 김현 시인이 <21세기 문학> 가을호에 '질문 있습니다' 제목의 글을 통해 일부 문단의 성폭력 사례를 폭로한 2016년 10월이 발단이었다. 그리고 한 달여 전 안태현 전 검사장이 성추행을 고발한 사건은 '미투(#Me Too)' 운동의 시발점으로 떠올랐다.

'En선생 옆에 앉지 말라고…젊은 여자만 보면 만지거든.' 고은 시인을 지목한 시 '괴물'이 소셜 미디어를 장식하면서 미투운동은 본격화했다. 연극연출가 이윤택은 피해자 16명에게 정식 고소됐다. 극작가 오태석, 배우 오달수·최일화·조재현,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신부였던 한만삼, 영화감독 조근현, 인간문화재 하용부, 시사만화가 박재동, 사진작가 배병우 등의 뒤를 이어 정치·교육계 등에서 성폭력 폭로가 확산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독재정권 비판, 시국선언, 촛불시위 등에 앞장서 진보인사라고 자처해온 문화권력자로서 공통점을 지녔다.

2000년 7월부터 약 3년간 활동한 '운동사회 성폭력 뿌리뽑기 100인 위원회'(100인위)의 위계적 관계에 따른 성폭력 실상 폭로는 매우 의미 있는 사건이었다. 100인위는 대학 총학생회, 노동조합, 사회운동 단체 등에서 성폭력 가해 혐의를 받은 17명의 사례를 실명으로 공개했다. 성폭력 사건의 공론을 구축하기엔 한계가 따랐지만 2차 가해를 성폭력 범주에 포함하는 계기도 만들었다. 이 폭로는 남성의 우세를 과시하고, 통제 권한을 매개로 성적인 범죄행위를 저지른 권력형 성폭력의 범주였다. 집단에서 도덕적으로 우월하게 여기는 직위, 선후배 관계 등을 악용해 여성에 대한 지배를 강화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권력은 지배계급의 문화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구성원들에게 은밀히 접근하고, 기존 체제의 이념과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암묵적으로 지지받아 왔다. 이러한 권력의 행사와 폭력성은 각 분야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난다. 더욱이 권력 행사는 그 힘의 근원을 은폐하고, 모든 적대관계를 숨기는 객관적인 음모에 나서게 된다. 그러나 지배 권력이 그들이 선호하는 관계를 통해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형성한다면 공정한 것인가. '피지배 계급'이 권력에 자연스럽게 순응하여 부당한 지배가 재생산된다면 우리 사회는 정당한 사회구조를 유지하거나 기대할 수 없게 된다. 이를 두고 부르디외(Pierre Bourdieu)는 '특정계급의 문화가 보편적이고, 사회구성원 모두 공유하는 상징체계로 등장하는 것은 임의적 조작의 결과'라고 비판했다.
문화가 드러나지 않는 상징적 권력이며 폭력의 도구가 된 사례는 미투운동에서도 확인된다. 특히 권력에 미약한 피지배 집단의 항거를 감히 예상할 수 없는 고질적 관습의 무대가 문화예술의 영역이었다는 것이 하나 둘 밝혀졌다. 존경을 받아야 할 명사들이 제자와 동료의식조차 기대할 수 없는 성폭력 패거리로 전락했다. 무엇보다 연극·영화와 같은 집단활동에서 지배권력의 의미와 불평등한 가치체계가 깊숙이 스며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마이클 애플(Michael Apple)은 '한 집단의 지배와 통제를 다른 집단이 자발적으로 수용하게 하는 힘'을 '헤게모니'로 규정했다. 젠더뿐만 아니라 역사와 문화예술 분야의 헤게모니는 다양성과 창의성을 가로막는 구시대의 산물이다. 오늘날 피지배 계급을 억압하고 부적절한 논리로 지배하려 하는 사례가 종종 등장한다. 이런 행태가 사회 각 영역에서 관철되고 있는 현상은 위험사회의 신호다.

미술작품 <자기 자식을 잡아먹는 사루르누스>는 아름답지 않은 인간사회의 사악성과 월권에 무뎌진 권력의 폭력적 억압을 표현하고 있다. 프란시스코 고야는 강자와 약자의 권력관계가 일방적 폭력으로 이뤄지고 있다며 권력의 사슬에 저항하는 대중들의 처절함을 화폭에 옮겨 놓았다. 화폭의 미투운동이다.

우리 사회는 불평등과 양극화를 극복하는 평등사회를 바란다. 권력은 횡포가 아니라 신뢰와 추앙으로부터 자연스럽게 강화된다. 반면 권력의 야만성은 처벌과 강탈, 세뇌와 복종으로부터 증폭된다. 개인과 집단의 이기심을 극복해야 한다. 미투의 고발에서도 인지한 것처럼 권력은 폭력적인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또 폭력은 권력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작용한다. 정치적 야욕을 달성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현대판 마키아벨리스트는 없는지 경계할 일이다. 미투운동으로 불거진 권력형 성폭력의 폭로 외에도 역사·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상징적 폭력은 없는지 자성할 일이다. 미투가 성폭력 가해자의 실명을 공개한 만큼 영역에 관계 없이 권력형 폭력사례를 가감 없이 폭로해 부당한 권력 헤게모니를 뿌리 뽑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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