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외문화재재단, 개인 소장자에게 구입…"예술성 뛰어난 왕실 공예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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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중반 이후 150여 년간 행방이 묘연해 소실된 것으로 추정됐던 조선왕실의 어책(御冊)이 프랑스에서 돌아왔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프랑스의 개인 소장자로부터 '효명세자빈 책봉 죽책'(孝明世子嬪 冊封 竹冊)을 구매한 뒤 지난 20일 국내에 들여와 국립고궁박물관에 기증했다고 31일 밝혔다.

외국에서 왕실의 의례용 도장인 어보(御寶)가 돌아온 적은 있으나, 왕과 왕후의 덕을 기리는 칭호를 올리거나 왕비·세자·세자빈을 책봉할 때 옥이나 대나무로 제작한 어책이 들어온 것은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왕실 어보와 어책 669점은 지난해 10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이번에 고국에 돌아온 효명세자빈 책봉 죽책은 순조 19년(1819) 효명세자빈을 책봉할 때 만들어졌다. 재질, 서체, 인각 상태가 매우 뛰어나며, 보존 상태도 양호한 편이다.

죽책에 새겨진 글은 당시 우의정 남공철이 지었고, 글씨는 서사관 이만수가 썼다. 크기는 높이 25㎝, 너비 17.5㎝이며, 6장을 모두 펼친 길이는 102㎝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지난해 6월 효명세자빈 책봉 죽책이 프랑스의 한 경매에 나왔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 경매사에 거래 중지를 요청했다.

이후 파리에서 보석상을 운영하던 할아버지로부터 죽책을 상속받은 소장자와 협의해 약 2억5천만원을 주고 사들이기로 했다. 구매 대금은 온라인 게임회사 라이엇 게임즈의 기부금을 활용했다.

효명세자빈 책봉 죽책이 프랑스로 흘러간 경위는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았다. 기록상으로는 1857년 강화도 외규장각의 물품 목록인 '정사외규장각형지안'(丁巳外奎章閣形止案)에 적혀 있는 것이 마지막이다.

프랑스군이 1866년 강화도를 침입한 병인양요 때 외규장각 도서를 자국으로 가져갔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시기에 프랑스에 유출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프랑스군이 남긴 약탈 문화재 목록에 죽책은 포함되지 않아 불에 타 사라진 것으로 여겨져 왔다.

죽책의 주인공인 효명세자빈(1808∼1890)은 '조대비'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풍양조씨 조만영의 딸로 11세에 순조의 아들인 효명세자와 혼인했다. 효명세자는 요절했으나, 부부 사이에 낳은 아들 환이 헌종(재위 1834∼1849)이 됐다.

효명세자빈은 훗날 신정왕후로 봉해졌고, 철종(재위 1849∼1863)이 후사를 남기지 않고 세상을 떠나자 흥선대원군의 둘째 아들인 고종(재위 1863∼1907)을 왕위에 앉혔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 관계자는 "효명세자빈 책봉 죽책의 귀환을 계기로 외규장각에 있었던 또 다른 유물들의 소재가 파악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