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실장
경인고속도로는 1967년 3월 공사에 들어갔다. 근대문물 '대한민국 1호'가 대부분 인천에서 비롯됐듯이 국내 최초의 고속도로였다. 당시 이 나라의 수출산업이래야 가발 수출이 주된 업종일 때다. 경인고속도로 건설은 수도권 산업화의 신호탄이었다. 당시 정부의 '서울·인천지역 국토건설 특정지역' 지정에 따른 최우선 사업이었다. 속전속결의 시대답게 이듬해 12월 바로 개통됐다. 고속도로를 뚫어 놓으면 부유층만이 자가용을 타고 놀러 다닐 것이라며 극렬히 반대하던 시절이었다. 경인고속도로 개통식에서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도로 위에 막걸리를 뿌리고 있는 흑백사진은 그 시절 배 고팠던 나라를 떠올리게 한다.

지난해 끝 무렵 인천은 축제 분위기였다. 경인고속도로의 관리권이 50여 년 만에 중앙정부에서 인천시로 넘어 온 것이다. 그래서 일반도로로 바꾸는 사업이 가능해져 '인천주권'이 회복됐다고 한다. '경인고속도로가 인천시민의 품으로 돌아왔다'며 춤이라도 출 듯했다. 마치 인천이 경인고속도로로 해서 엄청난 피해만 당해왔다는 느낌이었다. 건설 당시의 사진을 보면 고속도로 주변은 허허 벌판이었다.

언제는 인천시민의 경인고속도로가 아니었던가. 마침내 인천의 단절이 거둬지고 소음과 비산먼지 등의 환경피해에서도 '해방'되게 됐다고도 했다. 슬럼화된 주변 지역도 자연공원과 문화생태단지로 다시 태어날 것이라고 했다. 당장 지난해 12월 1일부터 일반도로에 걸맞는 속도제한이 시작됐다. 이 도로를 타고 생업에 나서는 시민들의 불만이 없지 않았지만 '인천의 숙원 해결'이라는 말에 묻혔다. 아직은 시속 100㎞로 달려도 될 도로를 너무 성급하게 시속 80∼60㎞로 제한해도 그냥 투덜거리고만 말았다. 시민들에게 저속도로의 느긋함과 여유를 미리 누려 보라는 뜻이리라 하며.

일반도로화 사업이 시작되면 그에 맞는 속도뿐 아니라 차선도 확 줄어든다. 구간별로 10차선인 고속도로가 4차선 일반도로로 바뀌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가장 걱정되는 것이 교통량 처리다. 기존 경인고속도로는 연간 5500만여 대, 하루 평균 15만여 대의 교통량을 처리하고 있다. 교통 처리량도 많지 않으면서 환경피해나 내는 고속도로라면 폐지해야 맞다. 현실은 아니지 않은가. 누가 뭐래도 경인고속도로는 인천의 기축 교통망이다. 특히 인천항의 물동량을 처리하는 화물업계의 우려는 '기우'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 일반도로화 사업이 완공돼 16곳의 교차로가 생기고 신호등이 걸리면 운행 속도가 현재보다 40% 이상 떨어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렇게 되면 인천은 엄청난 가치의 도시고속화도로 하나를 스스로 무너뜨린 댓가로 만성적인 교통체증에 시달릴지도 모른다.

우려는 벌써 현실화하고 있다. 인천 중구가 '경인고속도로 일반도로화'에 본격 반대하고 나서면서 정치성마저 띠기 시작했다. 중구 지역의 주장이 다 맞지는 않겠지만 '서울에서 인천항까지 2시간 넘어 걸릴 것'이라는 주장에는 반박하기 쉽지 않다. 그러면 인천은 어떻게 되겠는가. 인천사람들끼리만 오순도순 살 것이라면 별 문제 없다. 그러나 인천은 태생부터가 4통8달의 물류도시이며 전 인구의 절반이 모여 사는 거대 수도권의 한 거점이다. 경인고속도로는 처음 대한민국 산업화의 전략도로로 태어났다. 거기에 더해 지금은 인천의 대표적인 도시고속화도로 기능을 맡고 있다. 도시고속화도로가 뭔가. 도시가 급팽창하면서 도심·부도심을 연결시켜 주는 핏줄과도 같은 것이다.

만성적인 교통체증의 부산은 광안대교 등 도시고속화도로 덕분에 대한민국 제1의 관광도시로 거듭났다. 부산시는 올해 말에도 동·서 부산권을 연결하는 만덕∼해운대 도시고속화도로를 또 착공한다. 그런데도 인천은 스스로 이를 허물어 동맥경화증을 불러 오려는가. 문제는 대체도로다. 지금으로서는 경인고속도로 일반화에 대한 대체도로의 실체가 없다. 경인고속도로를 허무는 것은 대체도로 이후라도 늦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