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략) 이 세상 어디서나 등불은 켜지듯,/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 가랴./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 고통과 설움의 땅 훨훨 지나서/ 뿌리 깊은 벌판에 서자./ 두 팔로 막아도 바람은 불 듯/ 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니라./ 영원한 비탄이란 없느니라./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마주 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 -고정희 시인의 시 <상한 영혼을 위하여>중에서

2017년 달력에 마지막 잎새처럼 며칠 남지 않은 날들이 매달려 있다. 저 잎들이 떨어져야 2018년이라는 새 나무에 365장의 푸른 잎들이 무성할 거다.

올해는 왠지 다른 해보다 조용하다는 인상이다. 여행을 떠나고, 반짝이는 불빛 아래 모이고, 무언가 들뜨기 마련인데 나이를 먹어서 그렇게 느껴지는가 싶기도 하다. 그러던 차에 누군가 모임방에 재미 있는 제안을 올렸다. 12월이 되면 많은 계획을 세우지만 달성하기까지 쉽지 않으니, 이 모임방에 한 가지 지킬 것을 공개하고 지켜나가 보려고 한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도 같이 내년 계획을 공개해 지켜 나가보는 것은 어떤가 하는 제안을 했다. 제안에만 그친 것이 아니라 '반드시'와 '도전' 두 가지 키워드를 사용하여 약속을 만들어보자는 안까지 더불어 했다. '반드시'는 실현가능하지만 게을러서 하지 않은 것을, '도전'은 조금 힘들겠지만 내년에 꼭 하고 싶은 것을 넣어보라고 했다. 여러 사람이 '반드시'와 '도전'을 넣어 공개적인 약속을 했다.

정신없이 살다보니 벌써 내년 계획을 세울 때가 다가온 줄 몰랐다. 딱히 '반드시'와 '도전'을 넣어 내년 계획을 세우지 못해 주저하고 말았다. 그러다 이 '반드시'와 '도전'에 개인이 아니라, 이 사회를 포함하여 소망을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반드시' 내 집 앞은 내가 쓸겠다, 월 2회 장애인시설 방문 봉사 '도전'하기 식으로 말이다. 캄캄한 밤하늘에 두 손 마주 잡듯이 새해 새날에는 모두 잘 사는 길로 조금이라도 더 나아갈 수 있기를 빌어본다.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