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주간
오십보백보(五十步百步). 50보 도망이나 100보 도망이나 같다는 얘기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망정 본질적으로는 마찬가지라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는 별것도 아닌데, 서로 자기가 낫다고 다툴 때 많이 쓴다. '도토리 키 재기'라는 말도 그런 경우다. '한식에 죽으나 청명에 죽으나'라는 속담도 있다. 한식은 청명 바로 전날이다. 청명이 4월5일이나 6일을 가리키니까, 별 차이가 없을 때 쓰는 표현이다.

오십보백보의 유래를 한 번 보자. 중국 전국시대에 양나라 혜왕이 맹자를 초청해 부국강병책(富國强兵策)을 물어보았다. 하지만 맹자는 오직 인의(仁義)를 중시하는 왕도정치를 말할 뿐이었다. 그런데도 알아듣지 못한 혜왕이 계속 눈앞에 이득을 챙기는 정치에만 관심을 보이자 맹자는 이렇게 말한다. "전쟁터에서 싸움이 시작되자 한 병사가 백 보를 도망쳤다. 그러자 오십 보 도망간 병사가 그를 가리켜 겁쟁이라고 비웃었다. 임금께서는 어찌 생각하나요?" "오십 보든 백 보든 도망친 것은 마찬가지 아니오?" "그렇습니다. 진정으로 백성을 위해 베푸는 정치가 아니라면, 백성에게 자비를 더 베푸느냐 덜 베푸느냐는 중요한 게 아닙니다."

요즘 내년 지방선거에 나설 채비를 서두르는 이들을 보며 문득 '오십보백보' 격언을 떠올리게 된다. 씁쓸하기 짝이 없다. 상당수가 혜왕처럼 자기 이익에만 초점을 맞춘 채 시민과 유권자들은 무시하는 듯해 정말 안타깝다. 온통 자기 자랑과 치적만 늘어놓았지, 정작 당사자들이 살아온 과거 행적에 대해선 입을 꾹 다물고 돌아보지 않는다. 흠결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면서도, 지방선거에 임하는 자세를 보면 "아니다" 싶을 만큼 민망하고 애처롭다. 맹자의 말처럼 정치는 만인(萬人)에 대해 베풀고 이롭게 해야 하거늘, 자기 이익과 허영심에 눈이 멀어 이를 놓치는 정치인 또는 정치 지망생이 수두룩하다. 시민들 사이에서는 심지어 "그놈이 그놈"이라는 비아냥거림이 나온다. 오십보백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듯하다. 잘난 구석도 별로 없는 이들에게 무슨 기대를 하겠는가. 정치적 무관심과 냉소가 물처럼 흐르고 또 흐른다. 만날 그렇고 그런 이들이 출마하겠다고 하니, 그럴 만도 하다.

지금 인천과 경기를 비롯해 전국 각지에서는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입후보 예정자마다 셈법을 굴리느라 한창이다. 벌써 신문지상에는 이들의 면면이 소개되고 있다. 기초·광역자치단체장과 기초·광역의원 선거를 막론하고 모두 서로 눈치싸움을 벌이느라 분주하다. "이래서 내가 적임자요, 저래서 내가 알맞다"며 자기를 치켜세운다. 어느 곳에서는 벌써부터 과열양상을 띠면서 '너 죽고 나 살자' 행태까지 보인다고 한다. 마치 선거가 꼬인 실타래를 풀기라도 하는 것처럼 덤벼드는 꼴이다. 무척이나 우습다. 유권자 대부분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김치국물부터 벌컥 들이키는 이들에게 어떻게 내일을 기약할 수 있겠는가.
현실 정치가 지고지선(至高至善)의 가치인가. 그렇지 않다. 정치는 세상만사를 완전무결하게 해결할 수 없다. 그런 연유로 정치는 가차 없는 비판과 견제를 감내할 수밖에 없다. 긴장과 갈등이 솟아오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정치적인 수사와 다툼에 때론 진저리를 쳐도, 그런 곳에서 민주주의는 싹을 틔워 왔다. 정치가 때론 '개판'을 치더라도, 나름대로 '정화능력'은 갖추고 있다고 여겨진다. 그래도 시민들은 주먹구구식 구태의연한 정치는 아주 싫어한다. '옛날 타령'만 일삼다가는 손가락질을 받기 일쑤다. 시민들이 정치인을 예의주시하는 까닭이다.

우리 사회에서 정당성을 갖추지 못한 정치인들은 도태하고 만다. 모든 일을 정정당당하게 처리하고, 떳떳하게 움직여야만 시민들의 호응을 얻을 수 있다. 그렇게 해야 정통성을 인정받는 계기로도 삼게 된다. 아울러 미래세대에 꿈과 희망을 심어주지 못한다면, 그 어떤 근사한 공약을 내놓더라도 통하지 않는다. 유권자들의 눈높이가 높아진 셈이다.
내년 지방선거는 '정치혁신'을 세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명실상부한 지방분권을 이루는 선거로 기록될 터이다. 그런 만큼 더 투명하고 공명정대하게 치러야 한다. 입후보자들의 옥석을 가려내는 각 당의 슬기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 나물에 그 밥', 또는 '도긴개긴' 식으로 후보를 내세웠다가는 패배가 불을 보듯 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