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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눈발이라면/ 허공에서 쭈빗쭈빗 흩날리는/ 진눈깨비는 되지 말자./ 세상이 바람 불고 춥고 어둡다 해도/ 사람이 사는 마을/ 가장 낮은 곳으로/ 따뜻한 함박눈이 되어 내리자./ 우리가 눈발이라면/ 잠 못 든 이의 창문가에서는/ 편지가 되고/ 그이의 깊고 붉은 상처 위에 돋는/ 새 살이 되자. - 안도현 시인의 시 <우리가 눈발이라면>

며칠 전 청학동 마을공동체 <마을과 이웃>의 학습발표회에 다녀왔다. 학습발표회라는 말, 참 오랜만에 듣는다. 마을공동체가 운영하는 방과후 교실의 1년 결산자리였다. 연수구청 지하 공연장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리고 학습발표회답게 여러 발표가 이어졌다.

어린이 풍물단을 시작으로 동그란 웃는 얼굴판을 들고 나와 하하송을 부르는 아이들, 오카리나 연주, 하모니카 연주, 마을합창단과 마을어린이 공동체의 합창, 라인댄스, 마을풍물단 공연, 부채춤이 있었다.

양복에 빨간 보타이를 매고 쑥스럽게 웃는 어른, 정성껏 화장을 하고 드레스를 갖춰 입고 노래하고 연주하는 이들, 춤을 추면서 수줍게 웃는 아이, 신명나게 북을 두드리던 어르신, 화음을 맞춰 부르는 마을 합창단의 아이와 어른, 부채를 활짝 펼쳐들고 파도를 만들며 의기양양하던 아이. 공연을 보는 어느 순간 울컥, 목울대가 뻣뻣해졌다. 이 발표회를 위해 시간을 내고, 연습을 하고 준비하는 동안 서로의 마음에 피었을 따뜻한 정과 정성을 생각했다. 마을 사람들이 이렇게 어울려 정을 나누고 아이를 키우고 살 수 있구나, 내가 다 고마웠다.

느티나무 축제를 열고 700그릇의 국수를 삶아서 대접하는 것도, 복날에 삼계탕으로 어른들 보신을 돕는 일도 그냥 나오는 게 아니었다. 그들이 합창으로 불렀던 노래가사 '하쿠나마타타'처럼 이 <마을과 이웃>은 내내 아무 문제없이 행복할 것 같았다. 이들이 생각하는 마을사랑을 생각하니 어쩔 수 없이 애인(愛仁)이 따라붙는다. 애인이 별건가. 역사 깊고 전망 좋은 문학산에 굳이 또 전망대 세울 생각이랑 접어두고, 이런 단체를 적극 지원해주면 저절로 애인세상이 될 텐데. 사심 가득해진다.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