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전령 귀뚜라미의 미래식량 가치
▲ 왕귀뚜라미
가을이 오는 것은 울긋불긋 단풍으로만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침저녁으로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로도 가을을 느낄 수 있다. 여름의 아쉬움과 가을의 풍요로움을 가득 담아 울어대는 곤충 중 가장 가을 소리를 대표하는 것은 귀뚜라미이다.

오래전부터 우리 선조들은 귀뚜라미 소리를 즐겨 들었다. 고려시대 때부터 왕실이나 귀족들 사이에 귀뚜라미를 방안에서 사육하며 아름다운 소리를 통해 가을을 느끼고 외로움을 달래기도 했다. 어떤 종류의 귀뚜라미 소리를 들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주변에서 쉽게 채집할 수 있는 극동귀뚜라미나 왕귀뚜라미 일 것 이라고 한다('우리나라 곤충 이야기' 박해철 지음).

주변에서 쉽게 관찰되는 왕귀뚜라미(Teleogryllus emma)는 메뚜기목(Orthoptera) 귀뚜라미과(Gryllidae)에 속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귀뚜라미 종류로 덩치에 비해 아름다운 소리를 가지고 있다.

왕귀뚜라미는 알-애벌레-어른벌레의 성장기를 갖는 불완전탈바꿈곤충으로 1년에 1세대를 거치는데 알로 월동한다. 애벌레는 5~6월경 땅속 알에서 부화하고 풀, 죽은 곤충, 죽은 동물, 나무열매 등 다양한 먹이를 먹으며 여러 번의 껍질을 벗는 탈피 과정을 통해 성장해 8~9월경 어른벌레가 된다.

어른벌레가 애벌레와 다른 점은 날개와 교미기를 가지고 있다. 그러면 귀뚜라미는 어떻게 소리를 만들어 낼까? 가슴 쪽에 얇은 막(북처럼 생긴)을 가진 한쪽 앞날개와 오돌토돌한 여러 개의 돌기를 가진 반대쪽 앞날개를 마찰시켜 귀뚤귀뚤하는 소리를 만들어 낸다.

다른 많은 곤충들처럼 귀뚜라미도 수컷만이 우는데 주로 암컷을 부르기 위해 울고 종종 수컷끼리 먹이나 암컷 귀뚜라미를 놓고 경쟁하며 싸울 때에도 소리를 낸다.

교미를 끝낸 암컷 왕귀뚜라미는 산란관을 땅속에 넣고 쌀알처럼 생긴 알을 수십 개 낳는다. 알은 추운 겨울을 지내고 봄에 부화한다.

이렇게 과거 우리 조상들이 많이 애용하였던 왕귀뚜라미는 1년에 한 세대를 거치며 알이 겨울을 나야지만 부화하는 등 사육상의 어려움이 있어, 요즘은 외국에서 들여온 쌍별귀뚜라미(Gryllus bimaculatus)를 많이 사육하고 있다. 쌍별귀뚜라미는 왕귀뚜라미와 생김새와 크기가 비슷하며 생활습성도 매우 비슷하다.

단지 쌍별귀뚜라미는 25℃ 정도의 기온이면 1년에 몇 세대를 거치기 때문에 실내에서 연중 어른벌레와 애벌레를 쉽게 사육할 수 있다. 가을을 알려주는 전령사 귀뚜라미이지만, 현재 우리나라에서 쌍별귀뚜라미는 소리를 듣기 위한 애완용보다는 개구리, 원숭이, 물고기 등의 먹이 자원으로 보다 많이 사육되고 있으며 최근 10여년 전부터는 사람의 먹거리로도 많이 이용되고 있다.

쌍별귀뚜라미를 이용한 쿠기, 피자 등 다양한 요리의 보조 재료로 많이 사용되기도 하고 재료의 일부분으로서가 아니라 쌍별귀뚜라미 자체를 먹는 귀뚜라미 볶음, 구이 등으로도 이용이 많이 되고 있다. 귀뚜라미를 사육하는 것은 닭, 돼지, 소의 사유보다 많은 이점이 있다.

우선 먹이로 공급되는 사료량에 비해 얻을 수 있는 고기양이 소 보다 약 12배 이상이다. 공급되는 먹이도 사람이 먹기 위해 다듬어 버리는 배추잎 등 부산물로도 충분이 사육할 수 있으며 온실가스의 주범이라고 말하는 소나 돼지의 똥과 같은 암모니아성 부산물도 만들지 않는다.

귀뚜라미는 좁은 공간에서도 대량 사육할 수도 있어 공간적인 효율성에서도 가축보다 월등히 뛰어나다. 현대인의 문제 중 하나인 비만을 유발하는 지방의 함량은 낮고 단백질 함량이 높아 미래 식량으로서도 매우 가치가 높다. 우리선조와 우리는 귀뚜라미 소리를 들으며 가을의 정취를 느낄 수 있었으나 미래에는 귀뚜라미 소리를 들으며 입맛을 다실 지도 모를 일이다.

/서대문자연사박물관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