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원의 사람냄새] 시각장애인의 빛, 루이 브라유와 송암 박두성  
[전성원의 사람냄새] 시각장애인의 빛, 루이 브라유와 송암 박두성  
  • 인천일보
  • 승인 2017.11.07 00:05
  • 수정 2018.01.15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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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이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하는 점자(點字)를 영어로는 '브라유(braille)'라고 한다. 이것은 열다섯 살에 최초로 실용적인 점자(點字)를 만들어낸 루이 브라유(Louis Braille, 1809~1852)를 기리기 위한 것이다. 브라유는 3살 때 날카로운 송곳에 왼쪽 눈이 찔리는 사고를 당해 실명했고, 4살 때는 오른쪽마저 감염으로 실명하는 불행을 겪었다. 그의 집안은 안장과 재갈 등을 만드는 마구장이 집안으로 제법 유복한 편이었기에 파리의 국립맹아학교를 다닐 수 있었지만, 그런 혜택을 입을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1821년의 어느 날, 그는 학교를 방문한 육군 포병장교 샤를 바르비에(Charles Barbier)로부터 한 장의 종이를 건네받았다. 그 종이는 빛이 없는 어둠 속에서도 읽을 수 있도록 12개의 점(點)을 이용한 작은 요철이 볼록하게 새겨진 암호였다.

브라유는 여기에서 힌트를 얻어 시각장애인용 점자를 만들었다. 한글 자모를 표현하는 한글 점자는 1898년 조선에 머물고 있던 미국인 선교사 홀(HalI.R.S.)이 이른바 평양점자를 만들어 십계명과 4복음을 점역(點譯)한 것이 시초였다. 그러나 이 평양점자는 자음의 초성과 종성이 구별되지 않고 1개의 자모를 2칸까지 채워 넣어야 하는 불편 때문에 널리 사용되지 못했다. 1913년 조선총독부는 제생원(濟生院)을 설립하고 일본의 6점 점자를 가르쳤다. 1888년 강화도 교동에서 태어난 송암(松庵) 박두성(朴斗星, 1888~1963)은 제생원 맹아부(현 국립 서울 맹학교) 교사로 일하던 중 이를 안타깝게 여겨 1920년 비밀리에 조선어점자연구위원회를 조직했다. 이후 7년간의 연구로 몇몇 단점을 보완하여 1926년 11월 4일 드디어 최초의 한글점자인 '훈맹정음(訓盲正音)'을 발표할 수 있었다.

1936년 제생원을 퇴임한 그는 고향 인천의 영화학교 교장에 취임한 뒤로도 1940년 조선맹아사업협회를 조직하고, 점자통신교육을 시행하였으며 1945년에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잡지 <촛불>을 발간하는 등 한글 점자 보급에 앞장섰다. 1963년 76세의 일기로 생을 마칠 때까지 시각장애인을 위한 활동을 멈추지 않았던 그는 시각장애인의 세종대왕이자 조선어말살정책에 항거해 한글을 지킨 애국자였다.

/황해문화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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