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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믿는 건 내 가슴뿐이야. 난 내 가슴이 좋아. 젖가슴으론 아무것도 죽일 수 없으니까. 손도, 발도, 이빨과 세치 혀도, 시선마저도, 무엇이든 죽이고 해칠 수 있는 무기잖아. 하지만 가슴은 아니야. 이 둥근 가슴이 있는 한 난 괜찮아. 아직 괜찮은 거야. 그런데 왜 자꾸만 가슴이 여위는 거지. 이젠 더 이상 둥글지도 않아. 왜지. 왜 나는 이렇게 말라가는 거지. 무엇을 찌르려고 이렇게 날카로워지는 거지. -한강의 장편소설 <채식주의자> 중에서

추석 연휴기간 뜻밖의 기사를 보았다. 연작 장편소설 <채식주의자>로 멘부커 상을 수상하고, 5·18광주항쟁을 소설화한 <소년이 온다>로 이탈리아 말라파르테 문학상을 받은 한강 소설가가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의 기고문이 그것이다. 한강 소설가는 <미국이 전쟁을 말하면 한국은 몸서리친다(While the U.S. Talks of War, South Korea Shudders)>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했다.

한강 작가는 많은 사람들이 "북한이 또 다시 핵무기를 실험하고 방사능이 유출될 수도 있다는 직접적 가능성을 두려워한다"며 "점점 심화하고 있는 말의 전쟁이 진짜 전쟁이 될까봐 두렵다"고 적고 있었다. 그러면서 자택이나 직장에서 가까운 방공호의 위치를 확인하거나 명절 선물로 전쟁을 대비한 '서바이벌 배낭'을 준비하는 등 최근 한국 풍경을 사례로 소개했다.

필자는 아직 방공호의 위치도 모르고 '생존배낭'도 준비하고 있지 않다. 그렇다고 두려움 자체가 없는 것은 아니다. 전쟁이 일어나려면 필연적으로 보이게 되는 몇 가지 조짐이 아직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주시하고 있을 뿐이다. 또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양국 간의 설전이 서로를 자극하고 위협적인 도발이 전쟁으로 이어질까봐 심히 염려하고 있다. 작가도 그런 염려 때문에 글을 기고했을 것이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라는 말이 있다. 아직도 그 말이 유효한지는 모르겠다. 다만 한강 작가가 말했다는 "우리는 평화가 아닌 어떤 해결책도 의미가 없고, 승리는 공허하고 터무니없으며 불가능한 구호일 뿐이라는 걸 안다"라는 말을 북한과 미국이 되새길 수 있으면 좋겠다. 우리는 어머니의 둥근 젖가슴 같은 평화를 원한다. 왜 불쑥 '가만 좀 내버려 둬' 이런 생각이 떠오르는지 모르겠다.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