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국 문화체육부국장
"왜 광주에 오셨어라?" "기자니까." "기자는 사건이 생기면 (사건현장에) 가야 하는 거다."

관객 1000만명을 넘긴 영화 '택시운전사'에서 독일인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는 광주시민의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쉽지만 깊은 대답이었다.

1980년 독일 제1공영방송 ARD의 기자였던 그는 영화에서처럼 당시 택시운전사였던 김사복씨와 함께 광주로 향한다. 20일 오전에 광주로 잠입한 그는 23일까지 광주현장의 참상을 카메라에 담는다. 힌츠페터가 보낸 필름은 독일 제1공영방송을 통해 여러 나라에서 보도된다. 그 해 9월에는 '기로에 선 한국'이란 제목의 다큐멘터리가 제작·방송되기도 했다.

영화 '택시운전사'에서 위르겐 기자는 정말 '겁도 없이' 광주에 들어간다. 광주에 들어가기 전 군인들의 검문에 걸리자 "사업차 왔는데 지금 들어가지 않으면 정말 큰일 난다"고 너스레를 떤다. 광주를 빠져나올 때도 "사업차 왔는데 너무 위험해서 되돌아간다"고 태연하게 말하기도 한다.

종횡무진 현장을 누빈 것은 물론이다. 계엄군이 발포하는 현장에까지 뛰어들어가 목숨을 걸고 촬영을 이어간다. 약간의 영화적 연출이 가미됐을 수도 있으나 위르겐 기자가 광주민주화운동 현장에 있었던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며, 영화에 나오지 않은 위험천만한 상황도 많이 겪었을 수도 있다.

위르겐 힌츠페터는 '현장에서 살다 현장에서 사라진다'는 기자의 운명을 실천한 사람이었다. 그는 5공 말기인 1986년 11월 광화문 4거리에서 시위 취재 도중 사복경찰에게 맞아 목과 척추에 중상을 입었다. 앞서 베트남 전쟁을 취재하다가 1969년 봄 사이공에서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위르겐 기자는 세상에 대한 깊은 사랑과 높은 수준의 직업윤리 의식을 가진 사람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기자들이 큰 사건을 취재하는 건 사실 엄청난 행운이다. 특종은 운이 좋아야 만날 수 있으며, 5·18광주민주화운동을 취재해 당시 참상을 세계에 처음 알린 그는 복이 많은 사람이라 할 수 있다. 복과 운은 노력하는 사람, 성실한 사람에게 따라오는 법이지만.우리나라에도 위르겐 기자 못지 않은 기자정신을 실천한 분들이 많다. 1973년 박정희 군사정권, 1980년 전두환의 언론통폐합에 저항한 기자들이 있었고, 1973년 인천에서도 언론통폐합에 저항해 펜을 꺾은 언론인들이 있었다.

1986년 전두환 군사정권 때는 '보도지침'을 폭로한 기자로 인해 정의로운 펜이 살아있음을 보여줬다. 당시 제5공화국 정부는 언론통제를 위해 각 언론사에 보도지침을 시달하면서 언론을 철저히 통제했다.

그런데 1986년 9월 해직된 언론인들이 만든 단체인 민주언론운동협의회(언협)가 '말'지 9월호를 통해 1985년 10월부터 1986년 8월까지 문화공보부가 각 언론사에 시달한 보도지침 584건을 폭로했다. 이 사건으로 '말'지 발행인 김태홍 언협 의장과 신홍범 실행의원, 김주언 기자가 국가보안법 위반 및 국가모독죄로 구속됐다.

1987년엔 6월항쟁의 도화선이 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도 신문기자가 아니었으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을 수도 있는 사건이었다. 처음 한 일간지 사회면 귀퉁이에 '대학생 쇼크사'란 제목의 1단기사로 처리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은 이후 언론들이 기자적 양심을 바탕으로 경쟁적으로 취재해 보도하면서 결국 6·10항쟁의 도화선을 만들었다.

가깝게는 지난해 '최순실-박근혜 게이트'를 밝혀내 결국은 대통령을 구속시킨 주체 역시 기자들이었다. 선배들이 걸어간 언론의 길은 기자를 숙연하게 한다. 지금의 기자들이 과거에 비해 나은 여건에서 일할 수 있는 것은 선배들의 '투쟁 결과'가 아닐까. 때때로 '기자샐러리맨', '기레기'라는 오명을 듣기도 하지만 기자는 기자다.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기자는 중학교 2학년이었다. 주변에 대학교가 있었는데, 거의 매일 최루탄 냄새를 맡으며 수업을 받았다. 왜 대학생 형과 누나들이 데모를 하는지 알 수 없었고, 선생님도 얘기를 안 해 주셨다. 5·18에 대해 어렴풋이 알게 된 때는 대학에 입학한 1980년대 중반이었다.

재학 중 6월항쟁을 경험하면서 "졸업하면 기자가 돼 세상을 바꿀 것"이란 순진하면서 야무진 꿈을 갖게 됐다. 운 좋게도 졸업 뒤 기자의 꿈을 이뤘고 지금까지 기자 일을 하고 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생각했다. '저런 상황에서 나는 위르겐 기자처럼 행동할 수 있을까.' 기자의 정체성에 대해 다시 한 번 고민하게 한 위르겐 기자와 좋은 영화를 만든 장훈 감독, 배우 송강호, 토마스 크레취만, 유해진, 류준열을 비롯한 출연진에게 감사와 함께 박수를 보낸다.

/김진국 문화체육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