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옥이 내게로 왔다// 봄부터 가을까지 근면하게 살아온// 둥근 것들이 내게로 왔다// 푸르게 시작해서 붉게 익은 생들이// 내게로 와서 기꺼이 맛을 권한다// 한 박스의 가을// 완전한 느낌표들이// 주렁주렁 담겨서 내게로 왔다. 이재무 시인의 시 <사과 택배>

'처서에는 모기 주둥이가 비뚤어진다'는 재밌는 말이 있다. 비뚤어진다는 구부러진다는 말로 대체되기도 한다. 여름내 달궈질 대로 달궈진 아스팔트바닥마냥 지독하게 앵앵거리며 몸에 침을 박던 모기 주둥이가 더 이상 힘을 쓰지 못하는 계절이 왔다는 것이다. 한낮에는 아직도 볕이 뜨겁지만 바람의 결이 바뀌었다. 바야흐로 가을, 결실의 계절이 왔다. 그러나 폭염과 폭우로 농가의 사정이 그리 녹록치 않다. 다 물러버렸다는 배추나 고추도 그렇고, 한껏 달아야 할 과일의 당도도 신통치 않다. 농부의 수고가 한탄으로 바뀌지 말아야 할 텐데 하는 마음이 절로 든다.

요즘에는 시장이나 마트에 가면 과일코너의 사과를 기웃거리게 된다. 햇사과 홍옥이 나오기 시작하는 철이기 때문이다. 지난 가을에 수확해서 지금까지 나오고 있는 사과는 대부분 부사다. 껍질이 두껍고 저장성이 뛰어나 일년 내내 과일코너에서 볼 수 있다. 묵은 쌀은 바로 밥을 해놓아도 묵은내가 나듯이, 부사 사과도 어쩐지 여름이 지나면서 당도도 떨어지고 식감도 푸석해져서 맛이 없다. 홍옥이 나오는 때를 기다리게 된다. 홍옥은 저장하기 어려워 기껏해야 한 달가량 맛 볼 수 있는 것으로 안다. 홍옥은 젊은 처녀의 발그스레한 볼처럼 붉다. 예전에는 홍옥을 옷에 쓱쓱 문지르면 붉은 빛이 반짝여 차마 깨물지 못하기도 했다. 홍옥은 달고 시고, 아삭하다. 젊은이의 과일이다. 나이가 먹을수록 신맛에 진저리를 치게 된다. 잘 먹던 홍옥도 언제부턴가 주저하게 된다. 입안 가득 차는 신맛 때문이다. 그래도 이 가을에는 붉고 싱싱한 홍옥을 한 입 가득 깨물고 싶다.

모기는 주둥이가 구부러졌고, 가을빛은 모든 숨 쉬는 것들을 튼튼하고 단단하게 한다. 이 좋은 날들이 하수상하지 않으면 좋겠다. 도발이니, 전쟁이니, 불안 조성 말고, 갑질이니 그런 것도 말고, 고루 비치는 햇볕처럼 그렇게 따뜻하고 온기 있게 서로를 보듬을 수 있으면 좋겠다. '가을엔 기도하게 하소서' 시 한 구절 외울 수 있으면 좋겠다.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