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의선 철길이 새롭게 놓여진 후 '희망의계곡'으로 불리우고 있다.
▲ 한국전쟁 당시 미군1개 중대가 전멸한 '죽음의 계곡'.
▲ '죽음의계곡'에서 관계자들이 경의선 복원공사를 위해 머리를 맞대고 있다.
▲ 북으로 공사는 이어지고 있다.
숲으로 덮여있던 음산한 '죽음의 계곡'에는 철길이 곧게 뻗어 있었으며 눈부신 태양이 철길 위에 내려앉아 반짝거렸다. 한국전쟁당시 경의선 기차가 서울과 신의주를 향해 힘차게 달리던 계곡에서 미군 1개중대가 전사한 후 그때부터 '죽음의 계곡'으로 부르게 되었다.

반세기가 지난 후 그곳에 철길이 다시 새롭게 놓여 진 후, 군인들은 '희망의 계곡'으로 불렀다. 군건설단 간부들은 계곡의 공사현장에서 지뢰제거 현황 파악과 완벽한 기초공사를 위해 현장점검을 하고 있었다. 오직 기차가 힘차게 달릴 수 있다는 희망으로 민간인 기술자들과 군인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북으로, 북으로 경의선 복원공사를 하고 있었다.

장단역 좌우측으로는 늪지대가 넓게 펼쳐져 있다. 전쟁 이전에는 곡창지대인 '장단평야'였다. 그러나 반세기 동안 민간인의 출입이 엄격하게 금지되어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숲이 무성한 비무장지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늘이 파란 가을 어느 날 벼가 누렇게 익어가고 있었다. 농사를 지을 수 없는 곳인데 어떻게 벼가 있을까. 그것도 넓은 면적에 일정하게 자라서 황금물결로 출렁이고 있는 것을 바라보면서 가슴이 뛰었다.

비무장지대 서쪽 말도부터 동쪽 끝 해금강 까지 수차례 왕복하면서 구석구석을 누비며 사진을 찍어왔다. 그래서 비무장지대에서 농사를 지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곧바로 안내장교에게 군인들이 벼농사를 짓느냐고 물었다. 안내장교는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안내장교와 무장을 한 병사를 앞세우고 내 키 보다 더 큰 풀숲 수색로를 따라서 그곳으로 달려갔다. 고개를 숙이고 자세히 들여다보니 벼와 꼭 닮은 풀이었다. 몇 번을 들여다보아도 벼가 아닌 풀이었다. 참으로 신기하고 궁금했다. 전쟁은 비무장지대의 자연마저 변화시킨 슬픈 역사의 현장이었다.


최병관 사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