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사건 단편 모음집'애도불가능 죽음' 조망
▲ <병산읍지 편찬약사> 조갑상 창비 220쪽, 1만2000원
'보도연맹'은 광복 이후 좌익으로 활동한 사람들을 전향시키기 위해 1948년에 만들어진 교화 단체다.

이승만 정권에서 좌익과는 무관한 사람들까지 가입시키며 30만명까지 확대됐다.

1950년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빨갱이'를 솎아내려는 예비 검속이 추진된다.

그 과정에서 군경이 비무장 민간인들을 포함해 보도연맹에 가입된 사람들을 대대적으로 학살한다.

'보도연맹 사건'이다. 사건 발생 이후에도 계속된 좌우대립과 군부정권의 사건 축소, 은폐 작업으로 피해자들은 빨갱이, 사상범으로 낙인찍힌다. 보도연맹 사건은 피해자에 대한 보상이나 진상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현대사의 대표적 비극이라고 할 수 있다.

장편소설 <밤의 눈>으로 2013 만해문학상 수상작가 조갑상의 신작 <병산읍지 편찬약사>(창비·220쪽)가 나왔다.

이 책은 보도연맹을 주제로 한 단편을 비롯해 2009년부터 지금까지 발표한 작품을 묶었다. 198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후 30여년 동안 세권의 소설집과 한권의 장편소설을 발표한 과작의 작가가 5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다.

탄탄한 구조 안에 존재론적 고독과 둔중한 근현대사를 주로 이야기한 작가는 이번 소설집에서도 역사 속의 개인을 집요하게 조명하며 묵묵히 시대를 증명하는 작품들을 선보인다.

오랜 시간 천착해온 소재인 '보도연맹 사건'을 둘러싼 인물들을 포함, 과거와 화해하지 못하는 자리에서 이어지는 삶을 집요하게 추적하는 작가는 이번 소설집으로 이전보다 더 냉정하고 엄격하게 역사를 상대한다.

'애도 불가능한 죽음'이라고 작가 스스로 명명한 보도연맹 사건은 그에게 가장 중요한 테마이자 작가적 의무라고 할 수 있다. 오랜 시간 긴 애도를 하듯이 여러 작품에서 이 주제를 다뤄온 작가는 이번에도 보도연맹 사건과 관련된 여러 층위의 삶을 각기 다른 시간대에서 조망한다.

<병산읍지 편찬약사>에서 보도연맹 사건은 처형을 앞둔 보련원들이 탄 차에 장인을 태워보낸 박 영감의 이야기(해후), 아버지를 잃고 오히려 반공에 대한 강박만 생긴 채 열성적인 극우보수가 되어 결국 정치 이야기를 하다가 홧김에 죽어버린 김영호 씨의 이야기(물구나무서는 아이) 등에서 나타난다.

표제작 '병산읍지 편찬약사'는 보도연맹 사건을 병산이라는 지역의 읍지 편찬 과정을 통해 정면으로 그리고 있다. 읍지 편찬위원회로부터 읍지의 역사 부분 편찬을 의뢰받은 주인공 '이규찬 교수'는 초고를 작성하면서 과거 보도연맹 사건을 겪었던 지역으로서의 병산을 부각시키지만 편찬위원회는 "좌빨 글 싣는"다는 혐의를 피하기 위해서 보도연맹 사건에 대한 기록 자체를 줄여달라고 요구한다.

소설은 이 교수가 해당 내용을 스스로 검열하고 고치려고 노력하는 장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과거의 일을 올바르게 기록하고 기억할 의무를 지닌 한 개인이자 역사학자로서의 고민을 낱낱이 드러낸다.

출판사 관계자는 "격변의 한국 현대사는 과거 어느 시기에 대한 수식으로 단정할 수는 없고, 특정한 과거의 비극적인 사건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며 "역사가 승인하지 않는 삶을 예민하게 포착하는 조갑상의 소설은 과거로부터 파생된 현재에 우리가 기억해야 할 얼굴과 목소리를 짚어낸다"고 밝혔다. 1만2000원

/김진국 기자 freebird@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