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성 직원이 육아 휴직을 쓰고자 사장을 찾아온다. 쓰고 싶으면 써라, 뭐가 문제냐고 묻는 사장에게 그녀는 자신이 미혼이라고 말한다. 김영하 단편 소설 <최은지와 박인수>의 일부이다. 위의 상황에서라면 사장 뿐 아니라 많은 사람이 당황할 것이다. '보통'의 경우, 여성은 결혼을 해야 아이를 가질 자격이 있으며 결혼을 하면 으레 아이를 가지리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보통', '으레', '현실적으로' 같은 수식어와 함께 "여자가 결혼하면 출산하고 육아해야지"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오간다. 그러나 결혼과 출산 및 육아는 개인의 '선택'으로 결정될 문제이다. '보통', '현실적으로' 건네는 말은 개인의 선택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타인의 삶의 선택 혹은 가치에 대해 '보편'이라는 잣대를 들이대며 그의 미래를 전제하고 재단한다.

여기서 한 가지 짚을 것은 '존중'이다. 누군가를 존중하는 데 있어서 그의 의견에 얼마나 동의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당신의 동의와 무관하게 그의 선택은 그 자체로 폄하되어서는 안 된다. 애초에 '다름'의 문제이므로 인정해주고 말고 할 문제도 아니다. 그렇다면 비혼으로 임신을 하고 아이를 낳고 육아휴직을 받아 육아를 하는 일은 옳고 그름으로 판단될 수 없다. '보통' '여자' 나이가 얼마쯤 되면 결혼-임신-육아의 길을 가야 한다는 판단을 자신과 타인에게 손쉽게 적용하는 일을 그만두어야 한다.

비혼, 비임신 또는 비육아의 삶을 선택하는 것은 결혼한 사람의 가치를 무시하거나 임신을 택하고 육아를 하기로 결정한 사람의 삶을 지탄하는 일이 결코 아니다(물론 일련의 제도에 대한 구조적 재고가 필요하기는 하지만). 역으로 그것을 결혼, 임신, 육아를 선택하지 않은 것 또한 마찬가지여야 한다.

선택의 문제를 보편의 문제로 확대하고 절대불변의 진리처럼 여겨 '다른' 선택의 여지를 재고하지 않는 일은 '보통'일 수 없다. 애초에 '보통 여성'의 삶이란 있을 수 있는가. 삶은 선택으로 점철되어 있을 뿐이며 그 자체로 존중받을 필요가 있다. #보통 #여성 #선택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