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 출신 학병세대가 '대한민국의 설계자'…정치경제적 근대화 역할 조명
▲ <대한민국의 설계자들> 김건우 느티나무책방 296쪽, 1만7000원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든 사람들은 누구인가. 새책 <대한민국의 설계자들>(느티나무책방·296쪽)은 '학병세대와 한국 우익의 기원'이란 부제를 달고 있다. 이 책은 오늘날 대한민국의 뿌리를 추적한다.

'대한민국'은 1948년 8월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함께 '건국된' 나라로 좁히려는 관점이 있지만, 대한민국을 이야기할 때 3·1 정신과 상해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야기하는 것은 중요하다.

친일 문제와 한민족이 남북 분단 전 모든 국민이 바라던 국가의 설계도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 '대한민국'의 기본 틀을 만든 사람들은 누구이고, 그들의 설계는 어디에서 연유했으며 얼마만큼 현실에서 실현됐을까.

이 책은 '대한민국의 설계자'를 자부하려면 두 가지 조건을 갖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나는 일제에 부역한 사실이 없거나 그 사실을 철저히 참회해야 하고, 다른 하나는 북한과도 일정 정도 이상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친일을 하지 않은 우익'이 '대한민국의 설계자들'의 조건이라는 얘기다.

이 책은 광복 이후부터 한국 현대사의 근대적 전환기를 이룩한 1960~1970년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문헌들과 연구들을 참조하면서 이 시기 정부 정책을 주도한 이들과 민주화 진영에서 저항했던 사람들이 모두 이념적으로는 하나의 뿌리에서 뻗어 나온 가지들이라는 사실을 밝힌다. 그들이 바로 '친일을 하지 않은 우익', 즉 '대한민국의 설계자들'이라는 것이다.

저자인 대전대학교 김건우 교수는 친일에 물들지 않았으면서 북한 공산주의 정권과도 거리가 있는 '양심적' 우익의 실체를 살펴본다. 특히 '학병세대'가 눈에 띈다. '학병세대'는 주로 1920년 전후 다섯 해 정도에 출생한 이들을 가리킨다. 장준하, 김준엽, 지명관, 서영훈, 백낙준, 장기려, 선우휘, 김성한, 양호민, 류달영, 김수환, 지학순, 조지훈, 김수영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들의 사상적 선배로는 이들 '진짜 우익'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류영모, 함석헌, 김재준 등이 있으며 그 후배들로는 천관우, 이기백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들은 선배 세대인 이승만, 장면, 박정희 등과 달리 친일 문제에서 완전히 자유로웠고, 남북 분단의 현실에서 주로 이북 출신으로 남쪽을 택한 사람들이기에 반공 문제에서도 의혹이 없었다. 실제로 이들은 정치, 언론, 교육, 종교, 학술, 사상 각계에서 오늘날 대한민국의 기초를 놓은 이들이기도 했다.

광복 이후 새로운 나라 만들기의 주체를 세울 때, '친일' 여부 문제는 대단히 중요했다. '민족에 반역하고 친일을 했던 이들에게는 새 나라의 주체가 될 자격이 없다'는 공감대 때문이었다. 다만 많은 이들이 일제의 식민 통치에 협력했기에 나라 만들기의 과제를 수행해야 하는데도 '몸을 더럽히지 않은' 이들을 찾기가 힘든 건 사실이었다. 이때 '학병세대'가 시대의 중심에 등장했다. 일제 말 전쟁에 동원돼 자기 의사와 무관하게 전쟁터로 끌려갔던 사람들, 제국 최고의 고등교육을 이수했지만 친일 전력이 없는 이들이 새로운 나라 만들기 과정에서 중심세력으로 떠오른 것이다.

이들은 제국 일본의 교육을 정점까지 받은 엘리트 집단이어서 정치경제적 근대화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있었으며, 한국 현대사에서 불변의 상수에 해당하는 미국 정부와도 사이가 아주 좋았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서구 지향의 세계주의자였고, 대한민국의 근대화에 대한 투철한 신념이 있었다. 4·19혁명과 5·16 쿠데타 이후 한국의 산업화 과정에서 이들은 때때로 정치 현실에 참여해 박정희 주도 세력과 뜻을 같이하기도 했지만, 그 친일적 뿌리에 대해서는 반감과 의혹을 품었다. 이들은 또한 '제헌 헌법'에 구현된 상해 임시정부의 중도적 이념에 동감했고, 미국의 도움을 받아서 그려 낸 산업화의 밑그림을 박정희 정권에 제공했으며, 한국적 특수성을 내세워 정치사회적 자유를 억압하는 군사독재 정권과 치열하게 싸웠다. 저자는 이들 '진보 우익'이야말로 정통의 '대한민국의 설계자들'이라고 강조한다. 1만7000원

/김진국 기자 freebird@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