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와 싸울 때는 용감하게 싸워라/ 적을 타도할 수 없다면 적을 낙후시켜라// 힘으로 이기는 것이 아니다/ 돈으로 이기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크기로 이기는 거다/ 미래의 빛으로 이기는 거다// 인간은, 후지면 지는 거다 (중략) -박노해 시인의 시<후지면 지는 거다> ]

장미 대선이 끝났다. 새벽에 당선자가 공표되었을 것이다. 새로운 대통령이 내걸었던 공약을 다시 본다. 그리고 며칠 전 지난 인천5·3민주항쟁을 떠올린다. 그때 스무 살의 나는 시민회관 광장 한 가운데 있었다. 수만 장의 유인물이 하얗게 도로를 채웠고, 어디선가는 연기가 피어올랐고, 옷에 묻은 최루탄가루 때문에 어딜 가든 사람들이 재채기를 했다.

작년 인천5·3민주항쟁 30주년 기념으로 개최한 신포지엄에서 이우재 5·3민주항쟁 계승 조직위원장은 "30년전 5월3일 인천 주안 시민회관 사거리 일대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은 분명 민주화운동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감히 인천5·3민주항쟁이라 명명합니다." 라고 인사말을 했다. 나는 ''감히' 인천민주항쟁이라 명명합니다'의 '감히'가 가슴 아팠다. '당당히'가 아니라 '감히'였다. 그 항쟁의 내용을 알기에 '감히'가 더 가슴 아팠다.

그때의 싸움들이 있었기에 지금이 있다. 리어카 연단 대신 공연장을 방불케 하는 무대와 엠프 시설을 갖춘 연단이 있지만, 사회는 여전히 불평등하고 자본주의는 심화되었다. 인간의 자존이나 가치는 바닥에 나뒹굴고, '나만 아니면 돼' 라는 생각 속에서 '나'와 '가족'이기주의는 극에 달하고 있다. 이는 이 사회가 아직도 우리가 염원했던 사회로 가는 도정에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이 길 위에 민주화를 열망하며 찍었던 발자국을 따라 밟으며 더 굳게 길을 내야 한다. 아직도 이 나라에 우리가 열망하는 민주주의가 오지 않았다. 누군가는 이 길을 걸어가고 있고, 걸어가야 한다.

선거로 귀한 한 표를 행사했다면 이제는 그 한 표 한 표가 사표(死票)가 아니라 상생의 길을 열어가는 표가 될 수 있도록 함께 어깨를 걸어야 할 것이다. 선거는 끝났지만 아직 장미는 피지 않았다. 당당히, 후지지 않게 꽃은 우리가 피워야 한다.

/소설가